2018. 1. 5. 11:41ㆍ나의 이야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 속 마을 체스키크룸로프 (Český Krumlov )
블타바 강이 굽이쳐 흐르는 체스키크룸로프는 14~16세기에 수공업과
상업으로 번영한 도시입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체스키크룸로프는 카메라
렌즈 속에 가장 아름답게 담기는 동화 속 마을이기도 합니다.
1992년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체코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체코에서는 프라하에 이어서 두 번째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드라마, 영화, CF,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체스키크룸로프는 체코어로 "체코의(Český) 오솔길(Krumlov)"
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 마을 곳곳에 펼쳐져 있으며 마을을 끼고 커다랗게
휘어져 흐르는 블타바 강에서는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 레프팅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떠나 체스키크룸로프로 향하면서
바라다보는 도로변의 아름다운 전경
비엔나에서 체스키크룸로프로 향하던 곳에서 잠시 쉬던
휴계소 부근의 마을 풍경들
파스텔 톤의 전형적인 시골마을로 목가적인 전원풍경이
참 아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바라다 보이는 하천변 전경
고속도로 주변의 말 농장
비엔나를 떠나 오후 늦게 도착한 체스키크룸로프 주차장
근처에 설치된 안내판
체스키 크룸로프 안내지도
체스키크룸로프 관광동선
하늘에서 바라다 본 체스키크롬로프프 전경(※참고자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스키 크룸로프는 블타바강 만곡부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중세도시로
시간이 멈춘 듯 수백 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까닭에 이 도시를 보는 순간, 마치 제가
동화책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도시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체스키크룸로프성을 중심으로 중세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하회마을과 비교가 되는지라 무척 신비로웠습니다.
주차장 근처의 가옥
망토다리쪽으로 체스키크룸로프 구시가로 향하는 보행로
플라슈티 다리(망토 다리)전경
플라슈티 다리(망토 다리)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제 4정원과 제 5정원을 연결하는 다리로 높이가 70m 입니다.
이 다리는 체스키 성의 입구 역할을 하므로서 관광객들은 이 다리를 통하여
체스키 크룸로프 시내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불타바강은 갈수기인 탓인지 흐르는 물이 적은 탓에
레프팅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안보이는......
체스키 크룸로프는 블타바 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도시로
붉은 지붕과 둥근 탑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13세기 세워진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프라하 성에 이어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입니다.
이 도시가 가장 번성했던 때는 14세기 초에서 17세기 초까지의 기간이며,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하면서 둥근 지붕의 탑과 회랑 등이 추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 안에는 영주가 살던 궁전과 예배당, 조폐소, 바로크식 극장과 정원이
재현되어 있어 중세 귀족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구시가의 중심지는 중세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스보르노스티 광장주변으로
후기 고딕 양식의 성비투스 성당 등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즐비합니다.
18세기에 슈바르젠베르그(Schwarzenberg)의 소유를 마지막으로 공산 정권하에
속하게 되었으며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성 아래로 구시가지가 발달해 있는데, 다른 중세 도시들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져 있습니다.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각종 상점과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으며 좁은 길은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과 카페가 가득해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해마다 6월이면 축제가 열리는데, 마을 사람들 절반 이상이 르네상스 시대의
옷을 입고 거리에서 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또 체스키크룸로프성에서도 바로크 시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회나
18세기 귀족들의 가면무도회가 열립니다.
체코가 공산 국가였던 시절에는 그저 낙후된 도시에 불과했던 체스키크룸로프는
1992년에 프라하 성, 요한 네포묵 순례교회, 쿠트나 호라, 호란 비체 등과 함께
보헤미아 땅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300여 개 이상의 건축물이 문화 유적으로 등록되어졌으니
도시 전체가 유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타바강으로 인입되는 체스키크룸로프 마을내의 작은 하천
에곤 실레 미술관(Egon Schiele Centrum)
1993년에 세워진 에곤 실레 미술관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의 천재 화가인
에곤 실레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28년의 짧은 삶 동안 그가 그렸던 수채화와 회화를 전시해 놓은 에곤 실레 전시관과
20세기 국내외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현대 전시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에곤 실레 전시관에는 에곤 실레의 작품과 그의 소지품, 친필로 쓴 편지, 가구 등이 전시 중이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의 사진이 가족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여성 편력과 에로틱하고 과감한 신체 묘사로 그의 그림은 아직까지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논란이 있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의 그림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에로틱한 구상작품으로 유명한 미술가입니다.
빈 미술학교의 학생시절(1907~09)에 아르 누보의 일환인 독일의
유겐트스틸 운동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무렵 빈 분리파의 지도자인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났으며, 작품의 곡선미와 정교함은
클림트의 우아한 장식적 요소에 영향받은 바가 큽니다.
그러나 그는 장식보다 표현을 강조했으며 열정적인 긴장감으로
선의 감성적 호소력을 높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인물 표현에 몰두했고, 성적인 주제를 솔직하고 자극적으로
처리한 점이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1909년 빈에서 신예술가협회의 창립에 한몫 했으며,
1911년부터 유럽 곳곳에서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1918년 빈에서 열린 분리파 전시회 때에는 실레의 작품을 위한
특별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습니다.
주요작품으로 〈자기 성찰자 The Self Seer〉(1911)·
〈추기경과 수녀 The Cardinal and Nun〉(1912)·
〈포옹 Embrace〉(1917) 등이 있습니다.
그의 풍경화에서도 열정적인 색과 선의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Muzeum Voskových Figurín
체스키 크룸로프의 중세 거리 Latran 거리
중세의 오래된 도시인 체스키 크룸로프는 시내가 좁고 구불구불한 길들로 되어 있으며,
차가 없는 보행자 거리로 이루워져 있습니다.
거리마다 공예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과 실내 외 레스토랑들이 즐비해 있어서
방문객들을 유혹하는데, 특히 불타바 강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강변의 레스토랑은 정말 매력있습니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아래에 있는 거리인 Rozmberk town은
전통적으로 Latran라 불리워 졌습니다.
원래 이곳은 성에서 일하던 하인이나 기능공들이 살았던 곳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입니다.
구 시청사로 현재는 Museum of Torture
광장 중앙에는 1715년 추수감사절에 Matous Jackel에 의해 세워진 Marian Plague Column이라는
페스트가 끝났음을 기념하는 성삼위일체상 상징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파스텔톤의 귀여운 건물들이 감싸고 있는스보르노스티 광장
(Svornosti Square , Svornosti Náměstí)
구시가지 광장인 스보르노스티 광장은 13세기에 만들어진 광장으로 광장 한쪽엔 1715년
전염병이었던 페스트가 끝난 것에 대한 기념으로 세운 성 삼위일체 기둥이 있습니다.
광장 주변으로는 르네상스 타운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여운 파스텔톤의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이 광장을 감싸고 있습니다.
현재는 호텔, 시청사, 레스토랑, 기념품 상점, 관광 안내소 등이 자리잡고 있고 관광 안내소에서는
무료 지도를 받을 수 있으니 체스키크룸로프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들러 보는게 좋습니다.
이 도시의 시작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남 보헤미아의 비테크 가가 이곳에 터를 잡고 고딕 양식의 성을 짓기 시작하면서 부터인데
그 이후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그 시대의 건축물이 일부 늘어났지만,
18세기 이후에는 새롭게 지은 건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중세의 탑(Mansion Tower)
체스키 크룸로프와 관련한 사진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체스키 크룸로프의 랜드마크 격인
원통형 중세의 탑(Mansion)은 13세기인 1257년에 세워진 것으로서 1590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된 되어지면서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형태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높이에 따라 지름이 점점 좁아지고 외벽도 다양한 색채와 무늬로
장식돼 있어서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160개의 계단을 따라 탑을 오르면 발아래로 블타바강과 붉은 지붕을 가진 집들과 비투스 성당,
굽이쳐 흐르는 블타바강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준다고 합니다.
Restaurant and Pension Pod Radnicí 에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습니다.
이발사의 다리(Lazebnicky most)전경
이 작은 중세의 도시에는 아직도 전해져오고있는 사건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게 이발사의 다리(Lazebnicky most)입니다.
이 다리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2세 아들과 가난한 이발사의 딸과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발사의 다리라고 하는 이유는 17세기에 라트란거리와 다리가 맞닿는
곳에 하얀 집이 하나 있었는데 이 집이 이발소였다고 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황제였던 루돌프2세 황제의 아들
줄리어스 세자르가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체스키크룸로프성에 머물고 있을 때,
이발사의 딸과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났던 것을 사람들이 기억하기
위하여 "이발사의 다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루돌프2세 황제는 오래된 궁녀 카테리나 스트라다(Catherina Strada) 사이에
돈 율리우스 카이사르 디부아르 오스트리아(Don Julius Caesar d'Austria)라는 이름의
사생아를 얻었습니다.
사생아라고는 하지만 왕자였기 때문에 황제는 체스키크룸로프성을
사서 왕자에게 주었습니다.
1605년부터 성에서 살기 시작한 왕자는 1607년 어느 날 이발사의 딸 마르케타 피클레로바
(Markéta Pichlerová)를 부모의 동의를 얻어 궁으로 초대를 했다고 합니다.
조현병을 가지고 있던 왕자가 마르케타를 보는 순간 발작을 일으켜 그녀를 두들겨 팬 끝에
죽었다고 생각하고는 창밖으로 내던졌는데 다행히 그녀는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왕자는 그녀를 또 보내달라고 청했는데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이를 거절하자 그를 감옥에 가두는 바람에
그녀는 다시 왕자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1608년에 왕자는 마르케타를 살해하고 신체를 조각내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황제는 왕자에게 종신형을 선고하였고, 왕자는 1609년에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린다 라퍼티(Linda Lafferty)의 소설<사혈치료사의 딸>에서 이 비극을 다루고 있는데
1606년 프라하의 궁정에 머물던 루돌프2세 황제는 망나니짓을 하는 왕자
돈 줄리우스(Don Julius)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광기에 휩싸여 끊임없이 비행을 저지르는 젊은 왕자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여야 하였는데
결국 보헤미아에 있는 피클러(Pichler)라는 이름의 사혈 치료사에게 보내 정신병을 치료토록
한 것으로 피클러는 딸 마르케타(Marketa)를 조수로 썼고, 결국 왕자와 마르케타 사이에
합스 부르크 왕조의 유명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지요.
일각에서는 왕자가 마르케타를 살해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나머지는 전설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발사의 다리'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중세 유럽의 이발사는 이발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외과의사 역할도 했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이발소에서 보는 빨강, 파랑, 하양의 삼색 줄로 된 등 표시는
동맥, 정맥, 하얀 붕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발사의 다리에서 바라다 본 불타강 하류 전경
파노라마로 찍은 체스키크룸로프 고성 전경
성의 높낮이가 다른 탓에 앵글에 담기에도 버거운......ㅎ
St. Jost Church 전경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옛날에는 상가 주변으로 어부들이 거주를 하였고,
성 아래 란트란 거리에는 영주를 섬기던 하인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이발사의 다리에서 바라다 본 상류 전경
상류 구도심 건너편 전경으로 불타바강변 삼각주가
이발사의 다리 사진 촬영적소입니다.
이발사의 다리 건너편 마을 전경
성 요한 네포무크상
이발사의 다리에는 성 네포묵 동상이 있는데 성 요한 네포무크는
체코여행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바츨라프4세의 왕비의 고해 신부였는데 왕이 왕비의 외도를 의심해 신부에게
고해한 내용을 말해달라 명하였지만 성 요한 네포무크신부는 밝히지않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화가난 왕은 성 요한 네포무크신부를 포박상태로 블타바 강으로 내던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올려드릴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 포스팅에서
보시게 되면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이 있습니다.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 전경
이발사의 다리에서 연주를 하는 길거리 악사
이발사의 다리에서 올려다 보는 체스키키룸로프 고성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발사의 다리와 체스키크룸로프 구시가지의 조화란 ......
블타바 강(Vltava River)
블타바강은 체코 서부를 흐르는 강으로 전체의 길이는 435.4㎞입니다.
엘베강의 지류로 독일어명은 몰다우 강입니다.
블타바는 체코에서 가장 긴 강으로 블타바의 주류는 Eerny potok라 불리며,
해발 1,172높이의 체코 남서부 Eerna 산 보헤미아 삼림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산마루에 직교하는 지구대에 이르러 방향을 북쪽으로 바꾸어 수도 프라하의 시가를
가로질러 약 30㎞ 하류에서 엘베강으로 들어 갑니다.
블타바 강은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바바리아를 서로 분리시키는 슈마바(Sumava) 산
아래 지역인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S자 형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강변을 따라 중세의 아름다움 모습을 지닌 체스키 크룸로프 도시의 모습을
지금까지 간직하게 해 준 것은 바로 블타바 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체코의 민족 음악가 스메타나의 유명한 교향곡 "나의 조국" 중에 "몰다우"는
지금도 체코 국민들이 널리 사랑하고 애창하는 곡입니다.
성 요한 네포무크상
라트란 거리와 볼타바 강 건너 구시가를 연결하는 이발사의 다리의
원래 이름은 라브제니키 다리입니다.
라트란1번지에 이발소가 있었는데, 이 이발소의 딸과 루돌프 2세의 서자 돈 줄리어스 세자르의
슬프고 잔인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면서 이발소의 다리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다리 위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과 체스키크롬로프의
수호성인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이 있습니다.
St. Jost Church 전경
하류에서 바라다 본 체스키크룸로프 전경(※참고자료)
이제 체스키크룸로프 구시가지 투어를 마치고 고성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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