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5. 22:22ㆍ나의 이야기
소울음소리가 얽힌 설화를 간직한 미황사 경내 전경
미황사 일주문 전경
미황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로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로서 749년(경덕왕 8) 의조(義照)가 창건하였습니다.
사적비에 따르면, 749년 8월 한 척의 석선(石船)이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났는데,
의조가 제자 100여 명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해변으로 나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고 합니다.
배에 오르니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화엄경』·『법화경』
·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40성중(聖衆)·53선지식(善知識)·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곧 하선시켜 임시로 봉안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불(一萬佛)을 모실 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인연토(因緣土)인 줄 알고 멈추었다고 합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 하고는 사라졌는데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미황사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하여 미자(美字)를 취하고,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자(黃字)를 택한 것이라 합니다.
이 창건설화는 <금강산 오십삼불설화>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1264∼1294년 사이에 중국 남송(南宋)의 학자와 관리들이 이 절에 내왕하였다고 하므로
당시 미황사가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사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598년 만선(晩善)이 중건하였고 1660년(현종 1)
성간(省侃)이 3창하였으며, 1751년(영조 27) 덕수(德修)가 중건하여 금고각(金鼓閣)을 짓고
대웅전·나한전을 중건하였습니다.
그 뒤 고승 유일(有一, 1720∼1799)이 주석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의현(義玄, 1816∼1874)이 만일회(萬日會)를 열었다고 합니다.
1996년 만하당을 짓고 누각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달마전(達磨殿)·응진당(應眞堂)·명부전(冥府殿)·세심당(洗心堂)·
요사채 등이 있으며, 기타 석조(石槽)·당간지주(幢竿支柱)·부도군(浮屠群)·사적비(事蹟碑) 등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이 중 미황사 응진당(美黃寺應眞堂)이 보물 제118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응진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1598년 만선(萬善)이 신축하였으며,
1971년 주지 이하덕(李河德)이 일부 보수하였습니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16나한 등의 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은 1598년에 중건한 뒤 1754년과 1761년에도 중수되었으며, 1982년의 수리 때
묵서(墨書)가 발견되어 건물의 연혁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삼존불을 모셨고, 후불탱화(後佛幀畫)가 걸려 있으며, 법당 뒤편의 목궤에
넣어둔 괘불(掛佛)은 오래된 것으로 몹시 상하였습니다.
이 절의 부도군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 곳은 26기(基)의 부도와 설봉당(雪峯堂)·송파(松坡)
·금하(錦河)·낭암(朗巖)·벽하(碧霞) 등 대사비(大師碑) 5기가 있습니다.
다른 한 곳에도 5기의 부도가 있으나 전부 도굴되어 흩어져 있습니다.
또한, 미황사 사적비는 1692년(숙종 18) 민암(閔黯, 1634∼1692)이 세운 것으로서 초서로 된
높이 3m의 비인데, 옥개석 위에 용을 얹어 조각하였습니다.
이 밖에 절 뒷산 사자봉에는 ‘토말(土末)’이라 쓰인 비석이 있어
우리 나라 육지의 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미황사 오솔길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일원이 우리나라 명승(제59호)임을 알리는 표지판
어제 저녁 목포를 걸처 해남으로 와서 시내의 모텔에서 1박을 한후 이른 아침 도착한 미황사 경내입니다.
이름 아침인 탓에 하단부 주차장을 지나쳐 일주문 바로 아래에 있는 주차장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올 수
있었기에 어떻게 보면 사찰 관람은 이른 아침이 돌아 보기가 훨씬 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올린 사진은 제가 보기에도 촛점이 안맞아서 보기가 흉합니다.
또 랜즈가 속을 썩이는지.....쩝!
오랫동안 써왔던 랜즈를 얼마 전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있었는데 그 충격 때문인지 .....ㅜㅜ
자하루
달마대사 석조상
자하루 하단부
범종각
세심당(객실)
미황사 대웅보전(보물 제 947호)
해남 미황사 괘불탱(보물 제 1342호)
하심당(종무소)
응진당 전경
응진당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삼존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5호)
미황사 대웅보전 전경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3호)
응진당 전경
명부전
명부전 내부에 모셔진 목조지장보살삼존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4호)
미황사대웅전(보물 제947호) 전경
미황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로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잡석을 쌓은 높직한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그 위에 공포는
내사출목·외삼출목의 다포식으로 결구했습니다.
제공의 쇠서는 위로 가볍게 올라간 모양으로 18세기 이후의 보편적인 경향을 보여주며,
1982년 중수할 때 1754년(영조 30)에 중건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었으며,
상량문이 묵서된 종도리는 해체해 따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해남의 두번째 여행지인 도솔암으로 향하면서 미황사 하단부 저수지 상류 쪽에 있는
아담한 펜션의 독특한 구조가 저의 이목을 끌기에 잠시 들려 앵글에 담아 보았으나
랜즈 상태가 불량인 탓에.....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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