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거용관 (2018..9.21 )

2018. 11. 17. 12:11나의 이야기









줌으로 당겨 본 만리장성의 전경




만리장성은 중국과 그 바깥의 이민족 세계를 분리하는 구조물로,

 과거 중국의 방어 체계였습니다.


동쪽 산하이관에서 서쪽 자위관까지 총 연장선이 6,300km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 성벽으로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거리를 계산하는 단위인 리(里)는 현재 500m에 해당하는데,

만리장성의 길이를 리 단위로 환산하면 총 12,600리에 달해 만리장성이라 부릅니다.

최초로 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춘추 전국 시대로 여러 나라가 각자의

 방어를 위해 쌓아서 그 생김새가 달랐습니다.


 기원전 220년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면서 북쪽 국경을 따라서 성벽과 망루를 쌓는 대토목 공사를 벌였고 

그 후 들어선 어떤 왕조도 진나라만큼 만리장성 쌓기에 힘을 쏟지 않았습니다.


1368년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다시 만리장성 축조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명나라는 칭기즈칸이 세운

 원나라를 물리치고 들어선 한족 정권으로서 북방의 이민족이 늘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전략적인 방어를 하기 위해 더욱 견고하게 장성을 쌓았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장성 대부분이 명나라 때 축조되었습니다.

건축 자재는 흙과 석재, 그리고 벽돌로 성곽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봉화대와 보루, 관문이 이어집니다.


관문이란 군대의 주둔지로, 관문이 있는 곳에는 밀폐식 보루를 쌓아 성벽과 연결했습니다.


 만리장성은 세계에서 가장 긴 방어 시설로 1987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과거 중국의 방어 체계였던 만리장성이 지금은 여행 명소가 되었는데 산등성이를 따라

 용틀임하듯 축조된 만리장성에 오르면 경치가 일품입니다.


 베이징에서 가까운 쥐융관, 바다링, 쓰마타이 중 취향대로 선택해 방문해 보는게 좋습니다.

















만리장성 거용관(쥐융관)의 안내도




 붉은 실선이 도보로 걸었던 거용관 장성코스




새벽6시에 일어나서 이른 아침을 먹고 향한 곳은 창평 메리트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만리장성 거용관으로 1985년도에 제가 북경을 처음 왔을 때에 돌아 보았던 만리장성 팔달령은

 아니었기에 다행스러웠습니다.


같은 곳을 두 번씩이나 돌아본다는 것은 조금 지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은 수교 바로 다음 해인지라 북경으로 향하는 우리나라의 직항기가 없었던 시절로

 일본의 동경을 돌아본 후 이란 비행기편으로 북경으로 왔었는데 팔달령 만리장성에서

낙타를 타고 사진을 찍고는 만리장성을 올랐다는 북경시장의 인증서를 20위안의

돈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만리장성을 오르지 못한 사람은 대장부가 아니다"란......ㅋ


 그 때의 인증서가 집안 어디인가에 처박혀 있겠지만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이젠 기억 마져도 희미해져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번 북경 여행은 젊었던 시절의 추억 더듬기란 생각이.....


사실 대다수 여행사들은 입장료가 팔달령보다 거용관쪽이 저렴하고 한가하여 투어객들을

 인솔하기가 쉽기에 투어코스에 많이 포함시킨 탓에 이 곳을 방문한 것이겠지만 .......


P.S: 팔달령은 케불카가 놓여져 있는 탓에 사실 편하게 돌아 볼 수도

 있는 좋은 잇점도 있습니다.


















쥐융관(居庸关) 

 

북방 이민족이 베이징으로 입성하기 위해서 지나야 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즉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장성으로 시내에서 50km 떨어져 있습니다.


 케이블카와 모노레일, 동물원이 더해져 관광지가 된 바다링에 비해서

장성의 자연스러운 위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적어서 한적하게 장성을 산책할 수 있습니다.

1992년과 2002년에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쳤습니다.


쥐융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운대(云台)는 원나라 때 축조된 관성이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과거에는 3개의 티베트 불탑이 있었다는데 명나라 초기에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운대 안쪽에 불교 관련 그림을 비롯해 서하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중국어 등

 6종의 경문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끕니다.
















거용관 매표구 전경




팔달령에 비하면 조금은 한적한 곳이지만 워낙 이른 아침인지라 저희가 단체 관광객으론

 제 일착으로 도착을 한 탓에  이 곳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만리장성이 맞는지가 

의아스러울 정도로 한산합니다.


제가 1915년도에 팔달령 장성을 찾았을 때엔 그야 말로 인산인해로 수 많은 중국인들과

 외국인들로 뒤엉켜서 가이드  꽁무니를 쫓아다니기 바빴는데 .......ㅎ

 
















 고암나무 전경



















오늘 도보로 오를 만리장성 구간 전경

















사실 이 곳에서 단체관광객들에게 주어지는 관람시간은 1~2시간 정도이기에

오를 수 있는 구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거용관 장성을 오르기 전  입구에서 인증 샷을.....




















반대편 산능선의 만리장성


















하단부의 장성구간은 제법 폭이 넓은 편에 속하나 상부로 향할 수록 폭이 좁아지고

 경사도가 심한 탓에 철제 난간을 잡을 수 밖에 없었는데 장갑을 준비하지 못한 탓에

 철제 난간이 녹이 심한 탓에 손에 묻는 녹이 엄청나서 난처할 정도입니다.  


혹여 만리장성을 오르신다면 면장갑 정도는 사전 준비를 하시는게 편하리란 생각이.....


또 한 난간에 기대어 사진을 찍으신다면 옷에 녹이 묻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함께 한 옛 동료가 찍어 준 사진  


















만리장성의 전체 구간 모두가 똑 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대체로 서쪽보다는동쪽이 견고하게 축성되어 있으며 성을 쌓은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이것을 불에 구운 전(塼),그리고 돌 등인데 동쪽으로 갈수록 더 단단한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성벽은 높이 6∼9m, 평균 폭은 위쪽 4.5m, 아래쪽 9m입니다.


100여 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을 쌓은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였습니다.


때문에 왕조의 성격에 따라 만리장성의 중요성이나 만리장성에 쏟는 정성도 달랐습니다.


왕조가 공격적이었던 시기보다는 방어적이었던 시대에 만리장성은 더욱 중시되었습니다. 


북방 경영에 열심이었던 당나라 때나 전 세계를 무대로 침략전쟁을 벌였던 몽고제국과

 뒤이은 원나라, 만주에서 일어나서 만리장성 너머까지 다스렸던 청나라 때는

 그 중요성이 크게 떨어져서 개보수 작업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폭이 좁아지고 가파라진 장성 전경



진의 시황제라고 하면 먼저 만리장성을 연상할 정도로 만리장성은

 시황제의 상징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만리장성은 처음부터 시황제가 모두 쌓은 것이 아니라 춘추 전국 시대에

 이미 여러 제후의 나라에서 자국의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그 국경선에 장성을

 쌓은 것들을 이용한 것입니다.


제나라의 장성은 산동반도를 둘러싸도록 낭야산에서 태산 방향으로 쌓았으며

초나라의 장성은 여수(汝水)와 한수에 걸쳐 쌓여져 있었습니다.


 특히 진나라·조나라·연나라 등 세 나라는 북쪽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각각 장성을 쌓았으며 

 황하 중류의 이른바 중원에 가까운 위나라도 장성을 쌓았는데 천하가 통일되자 이 같은

 장성들은 오히려 교통을 방해할 뿐으로 불필요한 곳에 있는 장성은 철거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북쪽에는 흉노(匈奴) 세력이 강해져 장차 국경을 위협할 염려도

있었기 때문에 천하를 통일한 시황제로선 흉노를 저지하기 위해서도 북쪽에 있는

 장성은 철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진 시황은 대륙을 통일하면서 각국 사이에 존재했던 원래의 기능을 잃었던 장성과

 북쪽의 흉노를 방어하는 기능만 남았던 장성들을 몽염장군에게 30만군사를

 지휘케하여 완성한 것을 만리장성이라고 합니다.


진나라는 장성 수축을 위해 수 많은 병사를 동원하고 민간인까지 징발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동원된 민간인은 40만에서 50만 명으로 추정되며, 병사들은 30만에서

5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수축에는 대략 10여 년이 걸렸고, 대부분 험준한 산맥에 건축되었습니다.


당시 동원된 백성들은 극심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했으니, 약 5천여 킬로미터에 해당하는 장성을

 10년 만에 쌓은 것으로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백성의 고역을 반증하는 시"


아들이 있어도 키우지 말고, 말린 고기는 딸아이에게 먹이게.
모르겠는가! 만리장성이 해골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영정이 천하를 얻은 뒤, 북방에 만리장성을 쌓았네.
백성의 생명 절반이 흙이 되었고, 백골이 이리저리 다니는구나.



장성은 여러 왕조가 2천여 년에 걸쳐 축조했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에 따라

 구조, 재료, 높이, 폭 등에 차이가 있습니다.


구조에 따라 2층으로 건설된 곳도 있으며, 높이는 평균 6m~9m 입니다.


또한 건축 재료를 살펴보면 한나라 때의 장성에는 역암과 홍유, 명나라 때의

장성에는 벽돌이나 돌이 쓰였습니다.


 장성의 관문, 산의 입구, 산과 바다의 접경 지역에는 성루를 쌓았으며, 하천이 지나는 곳에는

 수문을 설치했고, 성벽 곳곳에는 망루를 설치했습니다.



























 경사도가 심한 탓에 나이가 드신 분들은 무척 힘이 듭니다.


계단을 오르다 지쳐서 쉬고있는 나이가 좀드신 한국 다른 여행사의 투어객 전경으로

이 곳 거용관 역시 이 시간대에는 한국여행사들의 여행객들로 .....


저도 오랜 만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보니 숨이 차는.....ㅎ









 














강과 구릉 지대는 물론 바다와 험준한 바위산까지 끊기지 않고 계속되는 만리장성은

 인간이 만든 가장 큰 구조물인 동시에 가장 거대한 공동묘지일지도 모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손톱이 들어갈 정도로 틈새를 넓게 돌로 쌓은

 일꾼들은 목을 잘랐다고 합니다.


만리장성은 장소에 따라 벽의 높이가 3미터에서 8미터까지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하단부의 너비는

 7미터, 정상으로 올라가면 그 너비가 4~6미터로 줄어듭니다.


요철형의 흉곽 길이는 안으로 1미터, 밖으로 2미터로 서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

 12미터 정도의 탑을 세웠는데 이곳은 무기고나 초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만리장성은 국방의 목적이 아니라 중국인의 ‘중화’ 의식의 산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중화민족이라는 우월주의와 폐쇄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작품이라는 뜻으로 장성이 어느 정도

흉노의 침입을 막을 순 있었지만 사실 흉노가 만리장성을 넘지 못한 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흉노를 포함한 북방 유목민들은 세력이 강성할 때마다 장성을 유린했답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에 축조한 것으로 특히 장대합니다.


 그러나 명대 장성도 벽돌로 표면을 쌓아 올려 견고한 곳은 수도 베이징에서 가까운 바다링(八達嶺) 등

 특별한 곳과 관문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만리장성은 중국인과 야만인들을 구별한다는 권력자들의 정책적인

 의지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볼 수 있답니다.























 윗 사진에서  바라다 보이는 보루와 후면 보루 위쪽의 만리장성 배경은 어떤 모습인지

 하단부 사진 2장으로 여러분들의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참고 사진



















참고 사진





















병사들의 쉼터나 무기고로 쓰였을 망루의 출입문을 배경으로......


















만리장성의 규모와 관련해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달에서도 보이는

 지구상의 유일한 구조물이 바로 만리장성이라는 것입니다.

만리장성을 우주 공간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러나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긴 머리카락도 몇 미터만 떨어지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만리장성이 아무리 길다 해도

 인간이 볼 수 있는 한계 범위에 들어올 만큼 폭이 넓지 않으면 우주 공간이 아니라

 지구 상공의 높은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리장성의 최대 폭은 7미터인데 이를 볼 수 있는 한계범위는

 대략 지상 23.3킬로미터까지라고 합니다.


 23.3킬로미터 이상 위로 올라가면 만리장성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상 23.3킬로미터는 지구의 성층권이지 우주 공간이 아닙니다.


 2003년 10월 발사된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를 타고 지구궤도를

 선회하면서 양리웨이(楊利偉)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만리장성은 보이지 않는다.”























제 사진을 찍는다면 이런 배경이기를 바랬는데 이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나름 사진에 일가견이 있어야만하는데 이번 여행을 함께한 제 동료가

그러지 못하다보니.....ㅋ



















결국은 이 사진으로 만족을 해야만 하는.....ㅎ






















시간이 많았다면 저 위의 망루 까지 오르고 싶었지만 이 곳 망루에서

오르기를 중단하고 하산을 결정 합니다.


설령 저 곳 까지 오른다고하여도 만리장성의 긴 용틀임을

 멋지게 담을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사진에 담을 만리장성의 명소는 시야가 터진 곳이라야 하는데

 이 곳은 협곡을 사이에 두고 만든 장성이다보니 만리장성의 긴 용틀임을

 담기엔 최적의 장소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리장성 외곽에 별따로 지어진 보루



































커피 샾  전경으로 커피의 중국어 표기는 가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