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월명공원을 찾아서(2016.9.16)

2016. 10. 10. 22:12나의 이야기








월명공원 출입구 전경




선유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다음 코스로 향한 곳은 군산의 구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월명공원이었습니다.


굳이 이 월명공원을 들려 걸어 보기로 작정한 까닭은 군산의 숨겨진 속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차량의 네비가 갈춰주는대로 도착을 하였더니 이 공원의 반대편인

 해망굴 터널 입구였었는데 공사 중인지라 반대편으로 돌아서 오니 이 곳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이 곳 흥천사 앞 공터에 차를 주차시키고 계단을 통하여

월명공원을 우산을 쓰고 돌아봅니다.   














월명공원 안내도














월명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전경














계단에서 바라다 보는 사찰 흥천사















독립유공자 이인식 선생님상(건국공로훈장 독립장 수여)














1974년 동작동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














등나무 쉼터 전경

















생각하는 시민상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상을 이용하여 생각하는 시민상으로 표현을 하였는데

 과연 이게 적법한지는.....ㅎ

파리의 로댕박물관에서 보았던 조각상보다는 작은 동상이지만

 모방도 위법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제 불로그 하단 검색창에서 로댕박물관을 치시면 제가 올려놓은 로댕박물관의

 로댕의 여러가지 작품들과 아름다운 로댕박물관의 정원들을 관람 하실 수 있습니다.
















사위질빵꽃
















새로 건설 중에 있는 동백교(2016년 완공예정)로 장항과 군산을 새로 연결하는 다리
















이 월명공원의 산책길은 구불길의 일부 구간이기도 합니다. 
















비둘기집 전경

















아마 이 자리가 남자가 사랑할때란 영화의 명장면 촬영지였던가 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본적이 없는 탓에......ㅎㅎ















해병대 군산 장항 이리지구 전적비

















해병대 군산,장항,이리지구 전적비 안내판


6.25동란 시 해병대 예하부대인 고길훈부대가 이 곳으로 처녀 출전하여 북괴군 제6사단 제13연대와

 최초로 교전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린 전투를 기념하여 세워진 승전탑입니다.

















전적비 앞에서 바라다 보는 군산시가지와 충청남도 장항 



군산 수산물연구 가공 거점단지 전경으로 해안 건너편이 충청남도 장항시가지이고

바로 좌측에 있는 섬이 금란도로 행정구역상 군산시 해신동입니다.
















월명공원에서 바라다 보는 금란도와 해안 건너편 우측의 장항제련소  



















수시탑전경
















1930년대의 군산을 돌아 볼 수 있는 군산 안내도














탁류길 안내판
















바다로 조각공원 입구
















수시탑과 음수대

















바다로 조각공원의 다양한 조형물





































일제 강점기 군산지역 출신의 채만식선생 문학비



채만식 선생님의 원적지는 전라북도 옥구군 옥구면 오곡리이며 전라북도 임피군

 군내면 동상리의 부농 가정에서 출생했다고 합니다.


 1922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에 은선흥(殷善興)과 결혼하며 그 후 일본 와세다 대학

 문과에 들어갔다가 간토 대지진으로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귀국하였습니다.


 그 후 장기결석으로 퇴학 당하게 되고  1924년부터 1936년까지 《동아일보》, 《개벽》,

 《조선일보》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새길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고  카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희곡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등에서 엿보이는 초기의 작품 경향은 카프의 경향파 문학과

 심정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어 동반자 작가로 분류됩니다.


 1934년 발표한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은 지식인 실직자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는

 대표작 중 하나로〈레디메이드 인생〉의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회화 기법은 채만식의 작품에서

 자주 관찰되는 특징으로, 채만식은 이 작품을 계기로 사회 고발적 동반자 문학에서

 냉소적 풍자 문학으로 작풍을 전환합니다.


1936년부터는 기자직을 버리고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는데, 농촌의 현실을 그린

 《보리방아》가 검열로 인해 연재가 중단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이후 대표작인 중편 《태평천하》(1938)와 장편 《탁류》(1938)를 발표했으며 역설적인

풍자 기법이 돋보이는 〈태평천하〉와 1930년대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바라보는 냉소적 시선에

 통속성이 가미된 《탁류》 이후, 《매일신보》에 연재한 《금의 정열》(1939)는

 완전한 통속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발표한 《아름다운 새벽》(1942), 《여인전기》(1945)는 친일 소설로

그 이후 친일 행적을 반성하는 의미로《민족의 죄인》을 발표하였습니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민족문제연구소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


 2002년까지 밝혀진 친일 작품은 소설 2편을 포함하여 총 13편이었으나 이후

 《아름다운 새벽》이 추가 발굴된 바 있습니다.


관념적이거나 구호적인 친일이 아닌, 등장인물의 의식과 생활에 밀접히 연관되는 내재적 친일성으로

인해 채만식 문학에서는 친일의 내면화 정도가 높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에 평의원으로 가담하여,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 중

 친일단체 부문에도 포함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습니다.


광복 후 자전적 성격의 단편 〈민족의 죄인〉(1947)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위를 고백하고

변명했으며 이 때문에 자신의 친일 행적을 최초로 인정한 작가로 불려집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직전 폐결핵으로 병사하였습니다.


채만식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탁류라는 소설은 군산을 관통하여 흐르는 탁한 물과

 당시 혼탁한 사회 현실을 적당하게 엮어서 식민 자본주의 타락상을 그려냈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희생을 강요당하여 파멸해가는 초봉의 운명을 통해 조선인들의 비극을 그렸는데

 당시 생활상을 주도면밀하게 표현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만,

 정작 본인도 초봉같은 운명이되리란 것을 예견한 것인지는......ㅜㅜ






















3.1운동 기념비















채만식의 문학비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 3.1운동 기념비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쓰라린 페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합니다.


그러나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는 남과 북의 대치 상황속에서도 오로지 북한을 두둔하는 짓거리들을

 하는 자들을 생각해보면  언젠가 남북 통일이 되어 그들의 흔적들이 백일하에 들어나게 될 때 

그 때에는 과연 그들은 무엇으로 변명을 하려고 하려는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삼불사 전경


















이제 이 곳에서 군산 구시가지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일제 강점기의

 아픈 흔적들을 찾아 돌아다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