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반원 터에 지은 화순 임대정 원림의 아름다운 가을(신안 세달살기2021.11.9)
화순의 굴비정식 맛집 수림정 전경
화순 만연사와 선정암을 돌아보고 임대정 원림으로 향하기 전
화순 시내에서 점심을 해결합니다.
화순은 오래전에 혼자서 이곳을 찾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혼자만의 여행이다 보니
화순 시내에서 제법 알아주는 식당인 수림정에서 점심을 해결하기에는 조금 가격이
비싼 탓에 그냥 지나쳤던 적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번 여행은 저와 신안 지도에서 삼개 월살 이를 함께 하시던 강선생님
내외분들과의 여행이었던지라 인원도 3명이어서 저렴한 가격으로 점심을 해결합니다.
점심시간대에만 제공되는 굴비 반마리 정식 3인분의 가격 30,000원 상차림 전경
화순 臨對亭 園林(임대정 원림)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사평리 601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89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69호
고 반원터에 지은 별서 임대정 원림
동복현(同福縣) 사평촌(沙坪村)에 집을 지었는데
계산(溪山)의 수석(水石)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 원(園)을 고반이라 하고
자호(自號)를 ‘고 반원 주인(考槃園主人)’이라 했다
- 남언기, 《고 반유 편(考槃遺編)》 중에서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구조
16세기 후반 퇴계로부터 ‘동방의 도학을 전수할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남언기
(南彦紀, 1534~?)는 전라도 동복현 사평촌에 정자를 짓고 은둔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 정원을 고 반원이라 하고, 자신의 호를 스스로 고반이라 짓습니다.
고반이란 《시경(詩經)》의 〈위풍(衛風) 고 반편〉에 “고는 이룬다는 뜻이고, 반은 머뭇거려
멀리 떠나지 않는 모양이니 은거할 집을 이룬다는 말이다(考成也 槃盤桓之意
言成其隱處之室也)”라고 주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고반은 은일자가 은거할 집을 마련했다는 뜻으로
세속을 떠나 산수를 즐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순의 임대정 원림은 남언기가 조성한 고 반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고반원에 초막을 짓고 자연을 벗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남언기는 1568년(선조 1) 학문이 뛰어나 동몽교관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이곳에 내려와 오로지 학문을 닦고 은일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 후 300여 년이 지난 19세기 후반 민주현(閔胄顯, 1808~1882)이 귀향하여
고 반원의 옛터에 정자를 건립하고 임대정(臨對亭)이라 명명했습니다.
임대정은 송나라의 명유,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시에서 가져온 명칭으로 주돈이는 자신의
향촌 생활을 “새벽 물가에 임하여 여산을 바라보네(終朝臨水對廬山)”라고 묘사했는데, 염계
주돈이를 흠모하던 조선사회의 유림들은 그를 본받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고 합니다.
민주현 역시 주돈이의 시구에서 취한 자구를 합성해 그가 새로 지은
정자를 임대정이라 명명한 것이지요.
이처럼 조선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준 주돈이는 특히 연꽃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 칭하며 〈애련설(愛蓮說)〉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임대정 측면 현판
임대정(臨對亭)은 조선 후기 철종(1849∼1863, 재위) 때에 병조참판을 지낸 사애(沙厓)
민주현(閔胄顯) 선생이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전통적 정원 형식의 3칸 팔작집으로
건립한 정자입니다.
임대정이란 이름은 동쪽에 있는, 봉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사평천 (沙平川)과 임하는 곳에
있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물가에서 산을 대한다"는 중국 송나라 주돈이의 시구를 딴 것)
이 정자에는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시를 읊었고, 충효 예절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임대정 전면 현판(정자의 현판이 2개)
1칸 반의 격실 내부 전경으로 온들 방으로 만들어져 있어 한 겨울에도 거취가 가능한 구조
격실의 아궁이 전경
임대정의 방지 전경
전남 화순읍에서 동남쪽 보성 방향으로 10km 정도 가면
남면사무소 소재지인 사평리에 이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는 동복현에 속했는데 현재 사평촌(지금의 사평리)을
돌아 흐르는 외남 천가에 임대정 원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외남천에 놓인 사평교를 건너자마자 우측 방향으로 난 사평길을
따라서 500m 정도 내려가면 임대정 원림에 다다릅니다.
임대정 원림은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어지는데 정자가 있는 상원은 지대가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하천 방향의 낮은 지대에는 지당 중심의 하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평길에서 상사마을로 분지 된 마을도로에 진입하면
곧바로 임대정의 상원으로 연결됩니다.
이곳에서 가장 처음에 만날 수 있는 정원 시설은 자연석으로 세워놓은 입석입니다.
이 돌에는 ‘사애 선생 장구 지소(沙厓先生杖屨之所)’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장구’라 함은 지팡이(杖)와 신발(屨)을 의미하는데 ‘장구 지소’는 즐겨 찾던 곳,
혹은 흔적이 묻어 있는 장소라는 뜻으로 즉 임대정 원림은 ‘사애 민주현이 즐겨 찾던
곳을 말합니다.
임대정의 상원은 정자를 중심으로 정원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높은 지반에 위치하고 있지만 매우 평평합니다.
상원의 남쪽 끝부분에는 임대정이 자리하고, 정자 앞으로는 작은 규모의
사각형 연못(방지)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방지에는 한가운데 둥근 섬(원도)이 있는데 이 지당은 우리 선인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음양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방지 안의 섬 정면에는 조그마한 입석이 세워져 있고
‘세심(洗心)’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자 한 선비의 정신이 깃든 글이지요.
방지 앞에는 평평한 돌을 놓아두었는데 3면에 모두 음각이 되어 있습니다.
앞면에는 ‘걸쳐 앉는 돌’을 의미하는 기임석(跂臨石), 오른쪽 면에는 ‘연꽃의 향기가 멀리
흩어지는 것’을 뜻하는 피향지(披香池), 왼쪽 면에는 ‘연꽃의 맑은 향기를 붙잡아 당긴다’는
의미의 읍청당(揖淸塘)이 새겨져 있습니다.
피향지와 읍청당은 각기 ‘향’과 ‘청’이라는 글자가 중간자로 구성된 어휘인데 주돈이의
〈애련설〉의 “향기는 멀리 있을수록 더욱 맑다(香遠益淸)”는 구절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러한 각자들은 모두 조선의 유림으로서 민주현이 따르고자 했던
선비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요.
상원의 방지는 산골짜기에서 끌어들인 물을 수원으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넘친 물이
홈통(飛溝)을 통해 폭포처럼 하원의 지당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원은 낮은 지형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상지와 하지
두 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연못은 자연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수구를 통해 연결됩니다.
상지는 남쪽에 위치하며 안에 두 개의 섬이 있고 하지는 북쪽에 자리하여
한 개의 섬을 못 안에 두고 있습니다.
섬 안에는 모두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는 배롱나무가 식재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소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대나무 숲이 어우러져
정원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습니다.
입석에 새겨진 ‘사애 선생 장구 지소(沙厓先生杖屨之所)’
진나라의 도연명은 국화를 가장 사랑했고
당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모란을 사랑했다
하지만 나는 유독 연꽃을 사랑한다
(중략)
향기는 멀리 있을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하고 맑게 심어져 있어 멀리 바라봄이 좋고
가까이 감상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평하건대 국화는 은일을 상징하는 꽃이요
연꽃은 꽃 중의 군자일 것이다
‘연꽃의 맑은 향기를 붙잡아 당긴다’는 의미의 읍청당(揖淸塘)
방지 앞의 기임석(걸쳐 앉는 돌) 전경
‘연꽃의 향기가 멀리 흩어지는 것’을 뜻하는 피향지(披香池),
상원림 전경
하원림으로 내려가는 돌계단 전경
좌측 큰 하지 가운데 두 개의 섬에 심어져 있는 백일홍
하지 2개소를 가로질러 만들어진 작은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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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잡풀이 무성하고 준설이 안되어 있는 탓에 섬이 2개인지의 구별도 힘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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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중 조금 규모가 작은 우측 연못 가운데 섬에도 백일홍이 심어져 있었는데
준설이 제대로 안된 탓에 연못인지 늪지인지 구분도 잘 안 되는 아쉬움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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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주변의 벚나무 거목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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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림 전경
임대정 원림 외에도 호남 지방에는 이러한 고정원이 많이 있는데 담양의 소쇄원,
명옥헌 원림을 비롯해 보길도의 부용동 원림에 이르기까지 다른 어느 지방보다도
많은 고정원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까지도 시서화(詩書畵)를 즐기고 풍류와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남도 사람들의 오랜 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임대정 원림은 2012년에 비로소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는 아직도 방치된 채 남아 있는 고정원이 많습니다.
하루빨리 아무런 손길 없이 훼손되어 가고 있는 다수의 고정원을 조속히 찾아내
국가유산으로 지정하고 보존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입니다.
임대정 원림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상지의 경우 물의 인입이 없었던 모습이었던지라
원형을 그대로 살리는 모습으로 재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지 2개소도 연못 안의
잡풀들을 제거하고 준설을 하여 옛 모습으로 재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원림의 대숲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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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정 상단에 사람이 기거하지 않는 고옥 전경으로 사애 민주현과의 연관 관계가 있는
고옥 같아 보였는데 이에 대한 안내문이나 문화해설사도 없다 보니 자세한 내막은 알
도리가 전혀 없습니다.
자세한 안내판이라도 세워졌으면 좋으련만....ㅜㅜ
고매 전경
이 오래된 거목의 매화는 봄에 어떤 매화꽃을 피우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선비들의 고고함을 상징하였던 임대정 원림의 이 고매화의 고운 자태를
다시 한번 찾아와 앵글에 담고 싶어 졌습니다.
이곳에서 천불 천탑을 비밀을 지닌 화순의 운주사로 또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