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신령이 살아 신성스러운 제주 영주산 오름(제주도 세달살기 2020.9.20)

뽀다구 2021. 1. 17. 00:00

 

영주산 정상부에서 내려다본 성읍저수지 전경

 

 

영주산 둘레길 안내판

 

영주산(瀛洲山)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1리에 위치한 오름(측화산)으로

높이가 326.4m로 산체가 비교적 크고 동북쪽으로 터진 말굽형 분화구의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면 전체가 초지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 아래 기슭에는 성읍 마을 공동묘지가 있는데 

풍수적으로 볼 때 정의현 읍치의 주산에 해당합니다.

 

영주산은 해발고도가 326.4m인 오름으로, 성읍 민속마을 북쪽

약 1.8km 지점에 위치한 성읍마을의 "뒷산"입니다.

 

분화구는 화산체의 남동쪽으로 터진 말굽형이고 오름 사면

대부분은 초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조선 시대 제주목사가 성읍리[당시 진사리]를 정의현 읍치(邑治)로 삼을 때

풍수지리적으로 영주산을 주산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영주산의 총면적은 약 1,338,920m2이며, 둘레 4,688m, 표고 326.4m, 비고 176m로

분화구 동쪽 안사면의 능선에는 용암노두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오름 동쪽 기슭에는 동쪽으로 터진 소형 분화구가 딸려 있으며 영주산 서녘 기슭을 흐르는

천미천에는 '가매소'라는 못이 있으며 오름 전체에 걸쳐 억새가 우점하고 있습니다.

 

 

영주산 굼부리(분화구)전경

 

 

무더위에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오르미들

 

 

일명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 전경

 

 

우도와 성산일출봉 전경 

 

 

성읍저수지 전경

 

성읍저수지는 천미천 상류지역에 2003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2016년에 완공을 본 다목적 저수지로

면적이 28만여㎡에 담수량 125만 톤, 평균 수심 8m에 이릅니다. 

 

어승생저수지의 13배 규모로 성읍리, 표선리, 하천리 125ha에 용수를 공급한다고 합니다.

 

 

영주산 오름 정상부에서 바라다본 한라산 전경

 

한라산을 ‘부악(釜岳)’이라고도 부르는데, 부악은 한라산의 정상에 깊고 넓은 분화구가 연못으로

되어 있어 마치 솥에 물을 담아 놓은 것과 같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연못은 한라산의 신선들이 흰 사슴을 타고 노닐다가 물을 마시게 하던 곳이라 하여

백록담(白鹿潭)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런 탓에 영주산 오름과 한라산은 전설의 혼용이 있습니다. 

 

 

 

우도와 성산일출봉 전경

 

 

영주산 오름의 정상부 산불감시초소 전경

 

원래는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중국의 『사기』에서부터 비롯되었는데

바다 가운데, 봉래(蓬萊)ㆍ방장(方丈)ㆍ영주 등 삼신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약초가 있어 신선들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200년경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역사(力士) 서불에게 그 약초를

구해 오라 명했는데 그때 서불이 찾은 곳이 바로 영주산이었습니다.

 

영주산은 원래 봉래산·방장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로, 신선이 살아 신령스럽다고 하여

‘영모루’ 또는 ‘영머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한자로 영지(瀛旨)로 표기한 뒤 영주산(瀛洲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이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탐라지』 등에도 영주산(瀛洲山)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주산'의 속명은 '영모루'인데, 정의현 북쪽 4리에 있다. 산 북쪽은

곧 정의 · 김녕 등이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정의 · 김녕 · 함덕에 신선이 많다.'라고 하였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산이 곧 바다 위에 있는 세 신선산 가운데 하나다.'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탐라지』에 '영주산(瀛洲山)'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탐라순력도』(한라장촉)와

『해동지도』(제주삼현) 등에는 '영주산(瀛洲山)'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영주산은 현재도 봉래산, 방장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로 일컬어지는데 성읍 마을에 있는

영주산도 신성한 산으로 인식되면서 '영주산'이라는 명칭으로 불린 것으로 보입니다.

 

영주산은 신선이 살았다는 곳이라 해서 신령스럽다는 의미로 영모루라 불렀다고 하며

이후 영지라고 하였으며 한자 표기는 같으나(靈旨 ~ 瀛旨) 뜻은 다르게 변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영지는 발음이 비슷한 영주로 부르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하며

더불어 한라산의 분신이라 하여 신산시(神山視)하는 데서 별칭으로 썼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시대적 흐름과 연계를 한다면 1목 2 현시대에 정의골(성읍리)에 현청이 있었던 만큼

이 당시를 전후해서 영주산도 신성시했거나 한라산의 분신이라는 표현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주산을 뜻하는 바가 바다와 섬을 포함하고 있어서 이해를 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따르는데 (바다 영瀛 + 섬 주洲). 그러나 옛 문헌 중에 바다(瀛) 위에 있는 신선산 중의 하나였다는

기록이 있어 영주(瀛州) 산으로 표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에는 공감이 갑니다.


 

제주에는 5대 명산이 있는데 한라산, 산방산, 성산(일출봉),

두럭산 그리고 영주산이라고 합니다.

 

두럭산은 김녕리 쪽의 여속의 암초라고 하는데 수중 여(암초)가 어떻게 제주 5대 명산에

포함이 되었는지는 저도 무척 궁궁합니다.

 

 

모지 오름과 후면의 따라비 그리고 새끼오름 전경

 

 

 

영주산 오름 주차장 옆의 삼나무 숲길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