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르메니아의 동굴교회 게그하르드.1 (2019.8.25)

뽀다구 2020. 1. 8. 19:06










아르메니아의 동굴교회 게그하르드(Geghard Monastery)


이른 아침 예레반 시가지 새벽 산책을 마치고 아침식사를 호텔에서 부폐식으로 먹은 후
 이 곳에서 북동쪽으로 1시간 정도 덜어져 있는 게그하르드로 향했습니다.

게그하르드 동굴교회는 4세기경 성 그레고리가 샘이 있던 동굴을 파서 만든
 수도원으로 13세기 초반에 재건축 교회를 세운 곳입니다.

 "게그하르드 수도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르메니아 예레반 근교에 있는 동굴 교회입니다.

망치와 끌만 가지고 거대한 암벽산을 뚫어내 거대한 기둥을 살리고
 2층으로 통하는 건물형태로 세워졌습니다.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한 그곳에 신의 영광을 심으려 했던 신앙의 숭고함으로 지어 졌겠지만,
 아르메니아가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지역이다보니 그 들만의 종교를 지키려고하다보니 이런
깊은 계곡속으로 숨어 들어와 성벽같은 요새를 만들어 신앙을 유지했던 것으로 여겨 집니다.




















십자가가 세워진 절벽 전경






















아르메니아 전통과자를 파는 노점상






















주차장 부근의 기념품 가판 매점전경






















주차장에서 바라다 본 게그하르드 수도원 담장으로 마치 요새를

방불케하는 성곽같다는 생각이...... 























게그하르드 사도교회  주차장 전경






















게그하르드로 향하는 언덕길에 세워진 Khachkar


























절벽에 세워져 있는  게그하르드 동굴교회의 수도승 기도처























게그하르드 사도교회의 출입문는 마치 중세 성의 성문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까닭에

 이 지역이 외세로부터 수 많은 부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연 암반에 새겨진 Khachkar
























출입문 옆에 파여진 홈들은 오래 전 교회 출입문에 빗장을 지르던 통나무들을

 끼워 놓던 홈 같다는 생각이.....












 












게그하르드 출입문에서 바라다 본 사도교회 전경





















이 수도원의 건축양식은 십자가를 빼고나면 이슬람 양식을 빌려다 쓴 것이라고 합니다.


 4세기 정도에 세워졌지만 외세의 침략과 지진으로 모두 파괴되고 13세기경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이슬람을 무시하지 않고 공존하자는 의미라고 하며 또 파괴를 면하고자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교회는 아자트 계곡 중턱에 육중한 바위산 아래에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 졌습니다.


암반을 파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이 곳 암석의 특성상

 일반적인 암반에 비하여 비교적 무르다고 합니다.




















게그하르드란 뜻은 십자가에 메어 달린 예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로마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던 바로 그 창을 의미합니다.


 예치미아진 편에서 어차피 한 번은 또 올려야 하겠지만, 참고하시라는

 의미에서 하단에 자료 사진을 올려드립니다.
























예치미아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게그하르드 교회의 창




일명 게그하르드의 창이라고 부르는 창날로 현재는 예치미아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창날은 예수의 제자 다대오가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가져와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교회 이름은 초기에 동굴이라는 뜻의 아이리였다고하는데 게그하르드로

 바뀌었고 그 의미는 "창의 끝"이라고 합니다.


혹시 오래 전 영화중 키아누리브스가 나온 영화 "콘스탄티"라는 영화를 알고 계시는지요?


거기에서 나온 창 롱기누스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것은 성경과 많은 관련이 있는 이야기로 기독교인이건 아니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었다는 사실은 모든 분들이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형벌을 받고 있던 시기에는 로마병사에게 푼돈을 집어 주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죽음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이 때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병사가 롱기누스라고하는데 하지만 이 말이

역사적으로 사실인지는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나온 내용을 보면 이 롱기누스는 백내장을 앓고 있어서 시력이 매우 안좋았는데

 본디오 빌라도의 명령으로 이 창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을 창으로 찔렀는데

거기서 나온 피가 자신의 눈에 닫게 되자마자 바로 시력을 되찾아서 그 자리에서 이

기묘한 현상을 격게 되면서 로마병사를 그만두면서 세례를 받아 사도들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롱기누스는 가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라는 곳에서 수도사가 되어 선교활동을 하다가

 박해를 받게 되고 이빨과 혀가 뽑히는 고문을 받았지만 말을 계속 할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 뿐만 아니라 그 상태에서 고문관의 도끼를 빼앗아 즉석에서 이방인의 신상을 깨 부수는

 패기를 보였다고 합니다.


결국 롱기누스는 참수 당해서 순교하여 후세에 성인으로

추앙받는 존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창이 진짜 예수를 찔렀던 창인지에 대하여서는 아직도???


























오스트리아 합스브르크 왕가 박물관에 전시된 롱기누스의 창(※ 참고자료)






이렇듯 오스트리아 합스브르크 왕가 박물관에도 롱기누스 창이 보존되어 있다보니.....ㅎ


 



















교회 뜰에는 바위 절벽에서 떨어진 큰 바위덩어리가 놓여있었는데 거짓말처럼

다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놀라운 사실을 기억하기 위하여 바위가 굴러 떨어진

 날짜가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성창(聖槍, 라틴어: Sainte Lance)은 얘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한 병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는데 예수의 피가 묻었다고 여겨지는 창입니다.


 기독교의 성유물 가운데 하나로 신약성경의 요한복음서 19장 34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부에선

 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 이 집필 당시 가현설 논란이 있자 예수가 죽었음을 확실히 하고자

집어넣은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나중에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병사의 이름이 론지뇨라고 알려지면서 론지노의 창

(라틴어: lance de Longin) 또는 운명의 창이라고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하여 게그하르드에서  아카펠라를 불러주는 합창단들




아카펠라(이탈리아어: A cappella)는 악기없이 목소리로만 화음을 맞추어 부르는 노래,

 또는 그렇게 부르는 방법입니다.


"카펠라(Cappella)"는 이탈리아어로 "교회"를 뜻하며 "아카펠라"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교회식으로(in the church style 또는 in the manner of the Church)"입니다.


중세 시대의 교회에서 대개 반주 없이 합창을 했던 데에서

유래하여,무반주 합창을 말합니다.
























게그하르드는 아르메니아의 코타이크(Kotayk) 지방에 있는 교회·무덤·수도원으로 구성된

 복합건물로 중세 아르메니아 건축과 아르메니아 장식예술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게그하르드 수도원 주 건물은 가르니(Garni) 계곡 아자트 밸리(Azat Valley)

위쪽 절벽 산허리에 있습니다.


게그하르드 수도원 전체 건물은 4세기경 그레고리(Gregory)가 신성 샘이 있던 동굴을 파서

 만든 것이며, 교회 본당만 1215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중세를 대표하는 독특한 복합 건축물이며, 사원 복합건물 안의 교회들 중 일부는 아자계곡의

 절벽 바위를 깎아 만든 교회 혹은 동굴 안에 만든 교회, 건축학적으로 벽을 쌓아 만든 교회,

 절벽 안 깊은 곳에 만든 교회 등 그 형태가 각양각색인 것이 특징입니다.


 2000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설립 당시 이름은 동굴사원을 뜻하는 아이리방크(Ayrivank)였으나, 나중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로마 병사가 찌른 창(槍)을 뜻하는 게그하르드로 변경되었습니다.


 오늘날 ‘아이리방크’ 또는 ‘게그하르드방크(Geghardavank)’로 불리기도 합니다.


최초로 건립된 사원은 9세기경 아랍인들의 침입으로 완전 파괴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후 복구되었으나, 아랍의 나스르(Nasr)가 통치했던 923년 사원 건물들이 불에 타 소실되었고,

 필사본, 고문서(古文書) 등 주요 문화재들이 약탈당하거나 지진으로 일부 파괴되었습니다.


동굴 수도원 출입문에는 석조에 새긴 문양이 있으며, 수도원 벽

 부조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습니다.


수도원의 입구와 외벽에는 아르메니아 전통 문양으로 장식한 석조 십자가인

카츠카르(Kachkar) 십자가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수도원에는 여러 개의 홀이 있는데, 이 홀에는 중앙 천정에

 환기와 채광을 위한 둥근 창이 있습니다.


 자연 암반과 잇대어 지어진 건물은 빗물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방수처리를 했으며,

 동굴 교회 내부에는 큰 홀을 만들어 성상을 설치했습니다.


서쪽 입구 근처에 작은 동굴들과 예배당, 조각품 등이 있으며, 입구 앞 오른쪽에는

 절벽 안에 만든 얕은 선반이 있습니다.


이 선반 위에는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던진 작은 돌이 놓여 있으며 입구 안쪽에는 건물 삼면을

 보호하기 위한 성벽이 있는데, 12-13세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사원은 본 예배당[Katoghike], 본 예배당 서쪽에 있는 가비타(gavit, 중세 아르메니아의 수도원),

 13세기에 바위를 손으로 깎아 만든 교회 아바잔(Avazan), 1283년 프로샨 왕자의 무덤이자 아츠바차친

(Astvatsatsin)의 두 번째 동굴교회인 자마툰(Jhamatun), 1288년 완공된 2층 자마툰[Upper Jhamatun],

 1117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 그레고리 예배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복합건물입니다.


본 예배당은 1215년 조지아의 타마르(Tamar) 여왕을 호위했던 병사의 도움으로 지어졌으며,

 순례자들의 예배장소, 교육 장소 및 회의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교회 기둥에는 성경구절이 새겨져 있으며, 돌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다.


평평한 바닥과 돔으로 된 천정으로 지어졌으며, 내부에는 기부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습니다.


 남쪽 정문에는 돌에 새긴 조각품들이 있으며, 아치와 외부 틀 사이에는 비둘기 문양이,

정문 정면 반원형 부분에는 석류와 포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정문 위에는 사자가 황소를 공격하는 형상이 부조되어 있는데,

 이것은 프로샨 왕자의 힘을 상징합니다.


1215-1225년 완성된 가비타는 중앙 천정부분이 돔으로 되어 있으며,

 4개의 원형 석조기둥으로 받쳐져 있습니다.


이곳은 모임장소나 강의실, 순례자나 방문객들을

수용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서쪽 정문은 다른 정문과 달리 꽃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정문 위쪽 원형부분에는

 여러 모양의 꽃잎과 길쭉한 나뭇잎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바위를 손으로 깎아 만든 첫 번째 동굴 밀실인 아바잔(Avazan)은 제의실(祭衣室)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4세기 신성 샘이 있던 동굴입니다.


중앙부는 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개의 아치가 교차하고

있는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바잔 동쪽에 있는 동굴교회인 자마툰(Jhamatun) 역시 바위를 깎아 만든 것으로

중앙 위쪽에 있는 부조를 보면, 입에 사슬을 문 사자머리 아래에 사슬에 목이 감긴

 두 사자가 있습니다.


 이 두 사자 사이에 양을 발톱으로 낚아채고 있는 독수리를 볼 수 있는데,

이 독수리는 프로샨 왕자[Proshian Prince]를 상징합니다.


1288년 완공된 2층 자마툰[Upper Jhamatun] 역시 바위를 깎아 만든 교회로,

 건축형태는 가비타 교회와 같은 양식입니다.


메릭(Merik) 왕자와 그리고르(Grigor) 왕자의 무덤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내부에 성가연습장으로 사용된, 소리가 울리는 메아리 방이 있습니다.


길 위에 높이 서 있는 성 그리고르 예배당[Chapel of S. Grigor]은 1177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입구에서 사원까지 이르는 거리가 100m입니다.


대부분이 동굴모양의 영향을 받았고, 일부분만 튼튼한 암석을 잘라 조립하여 만든 것이으로

 평면 직사각형 모양과 말굽 모양의 애프스로 된 예배당은 통로와 부속건물들을 통해

 동쪽과 북동쪽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석고반죽의 흔적과 어두운 프레스코화의 일부분은 예배당 내부에

벽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로는 12세기에 기부된 사도 앤드루와 존의 창,

 많은 기독교들이 기부한 필사본 등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유대 사도였던 타데우스(Thaddeus)가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로마병사의 창을 아르메니아로 가져와 유적보관소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이 창은 현재 예치미아진 교회 보물실[Echmiadzin treasury]에 이전 보관되고 있습니다.























아카펠라를 부르는 합창단 전경



4세기에 처음 동굴수도원을 만들 때 위쪽에서 부터 파 내려오며 수도원을 만들었는지

아래쪽에서 파 올라가며 수도원을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논란이 많았다고 하는데 기둥

아래쪽을 보게되면 결론이 나오는데 아래쪽 부터 파서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기둥 위

기단에 문양을 만들고 섬세한 조각을 넣으며 시작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아카펠라(Acappella)



이탈리아어로 ‘카펠라’는 원래 ‘소(小)성당’ 또는 ‘성당 안의 기도실’이라는 의미로 이탈리아의

 큰 성당 안에 들어가면 전면에 제대가 있고 양쪽 옆으로 작은 방들이 있는데, 작은 제대와

 성상(聖像)들이 있고 철문을 통해 안을 볼 수 있는 그 공간들을 '카펠라'라고 부릅니다.

(과거 이탈리아에서는 특정 귀족 가문들이 성당에 거액의 봉헌금을 바치고, 그 대가로

 성전 내부에 이런 가족 전용 기도실을 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펠라'는 ‘교회전례를 위한 합창단이나 성가대’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고, 후에는

 교회 전례의 합창이나 독창을 반주하는 오케스트라를 가리키는 단어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아카펠라(Acappella)는 무반주 합창곡. 중세 유럽의 교회 음악에서 유래한 말로,

악기 반주 없이 부르는 합창곡을 뜻하는데 요즘에는 반주가 없는 모든 음악에 쓰이며

대중문화에도 수용되고 있습니다.





















교회 내부의 공명 영향으로 이 들이 부르는 노래는 무척 엄숙하고 경건하였는데

 마치 천상의 소리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교회 내부에는 유럽의 다른 교회와 같이 이 교회 건축에 큰 공을 들였던 왕족들의 무덤과

 수도승들의 무덤이 함께 있는 것 처럼 보였는데 아마도 이런 연유는 한 때 아르메니아 정교가

 로마 교황청 지배하에 있던 시기였기에 그런 것으로 여겨집니다.   























교회 내벽에 새겨진 Khachkar























기독교 전래 초창기 교회의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던 신분인 여자들은 이 구멍으로

 예배를 드리던 모습을 몰래 바라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천정 한가운데에 있는 예르디크(yerdik, 연기가 나가도록 지붕에 낸 구멍)가 내부 공간에

 빛을 투과하여 교회 내부를 밝혀 줍니다.




























동굴교회 통로 벽면에 새겨진 키치하르































 찍은 사진이 많은 탓에 2부로 나누워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