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공예관에 전시된 국보와 보물들(2019.12.29)

뽀다구 2020. 1. 1. 12:37













반가사유상(삼국시대 국보83호)




반가사유상은 한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의 상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반가사유상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머리에는 삼산관 또는

 연화관이라는 낮은 관을 쓰고 있습니다. 


상반신에는 옷을 전혀 걸치지 않고 목걸이만 착용하고 있으며, 하반신에는

 율동적인 치마자락이 다리를 감싸며 대좌를 덮고 있습니다.


신라계 승려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 고류사의 붉은 소나무로

 만든 반가사유상과 유사합니다.











    












청동 은입사 물가 풍경 무늬 정병(고려시대 국보 92 호)



정병은 맑은 물을 담아두는 병으로, 본래 승려가 지녀야 할 열 여덟 가지 물건 중

 하나였으나 점차 불전에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불교의식을 할 때 쇄수게(灑水偈)를 행하면서 의식을 인도하는 승려가 솔가지로 감로수를

 뿌림으로써 모든 마귀와 번뇌를 물리치도록 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고려시대의 정병은 대체로 몸체가 계란형이며, 매끈하게 빠진

긴 목 위로 뚜껑 형태의 둥근 테가 놓입니다.


그 위로 다시 대롱형의 물을 넣고 빼는 첨대(尖臺)가 솟아 있으며, 몸체 한쪽에는

중간을 잘록하게 좁힌 비녀처럼 생긴 귀때[注口]가 튀어나와 있습니다.


정병은 물가의 풍경을 담아냈는데, 언덕 위로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물 위로 노를 저어가는

 어부와 낚시꾼 등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정경입니다.


 이 모든 풍광이 표면에 홈을 파서 은선을 두드려 박는

 은입사 기법으로 장식되었습니다.


 병의 긴 목에는 구름무늬, 동체의 어깨와 굽 주위에는 여의두무늬[如意頭文],

 귀때에는 풀무늬[草文]가 입사되었습니다.


 은을 돌린 굽은 지금은 파랗게 녹슨 몸체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청동제의 병에 은상감을 한 예는 적지 않으며, 이러한 기법이

고려청자에도 통용되어 주목되고 있습니다.





















청자 어룡 모양 주전자(고려시대 국보 61 호)



 이 주전자는 상상 속의 동물인 어룡(魚龍)이 물을 박차고

힘껏 뛰어 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어룡은 머리가 용, 몸통이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인물이나 동식물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청자를 상형청자라고 합니다.


상형청자는 모본이 되는 형상의 대표적인 특징을 골라서 묘사했기 때문에

 어느 경우에는 모본보다 강한 느낌을 줍니다.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고려시대 국보 95 호)



 이 향로는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명품 가운데 하나로 이 향로는 향이 빠져나가는 뚜껑과

 향을 태우는 몸통,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받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 다른 모양을 기능적으로 결합하여 완성된 조형물로 나타내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음각, 양각, 투각, 퇴화(堆花), 상감, 첩화(貼花) 등 다양한 기법이 조화롭게 이용되었습니다.























청자구형수주 (고려시대 보물 452 호)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감 있는 구성을 보이며, 복판 앙련형의

 승반 위에 거북이 앉아 있는 형상입니다.


 주구·수구·손잡이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군데군데 금으로 보수한 흔적이 있으나

 얼굴과 각 부분의 표현이 매우 정교합니다.


뚜껑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손잡이에 남아 있는 고리로 보아 연봉형 뚜껑이

 이 고리와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눈과 손잡이에는 철사로 점을 찍어 각각 눈동자와 반점을 나타냈고 거북 등에는

 2중의 6각형 무늬 안에 '王'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굽 바닥 여러 곳에는 규사를 받쳐 정교하게 구운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와 유사한 크기와

형태를 가진 예로 청자구형수병(국보 제96호) 등이 있습니다.


유약의 두께가 상당히 두터운 편이며, 부분적으로 노태된 곳이 있지만 광택과 빛깔은

 전형적인 청자 전성기 비색청자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고려시대 국보 60 호)



향로는 화로에서 피운 향이 뚜껑의 구멍을 통해 사자의 입으로

 빠져나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뚜껑에 장식된 사자가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사자를 조각한 후

 뚜껑에 붙일 때 유약을 사용하면서 미끄러진 것으로 보입니다.


 향로 형태는 뚜껑의 경우 윗면에 한 단을 더 조성하여 그 위에 사자를 올렸으며, 단이 형성된

가장자리에는 여의두문을, 측면에는 초화문을 음각하였고 규석을 받쳐 구웠습니다.


화로의 몸체 여백에는 넓게 퍼진 구름문을 가득 음각하였습니다.


전에도 음각한 구름문을 일정한 간격으로 5곳에 배치하여 장식하였습니다.


 뒷다리를 구부려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 크고 동그랗게 뜬 눈에 철화 안료로 표현된 눈동자,

 낮게 숙이고 있는 귀, 등에 올려붙인 꼬리 등은 매우 친근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이와 같은 상형 청자는 고려청자의 전성기였던 12세기에 제작되어 두드러진 특색을

 이루는데, 고려청자 특유의 아름다운 비색과 더불어 세련된 조형으로서 당시 고려 공예의

 높은 솜씨를 엿보게 합니다. 






















청자 양각 갈대 기러기무늬 정병(고려시대 보물 344 호)



 『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시대 정병에는 맑은 물을 담았다고 합니다.


 이 정병에는 수양버들 아래 노닥거리는 원앙 한 쌍 등 한가로운 물가 풍경이 새겨져 있습니다.


국보 제92호로 지정된 청동 물가 풍경 무늬 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과 매우 닮았습니다.





















4.청자 거북이 모양 연적( 고려시대),  5.청자 오리모양 연적(고려시대)























청자 참외 모양 병(고려시대 국보 94 호)




 고려청자의 절정기인 12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으로 고려 17대 임금인

인종(仁宗. 재위 1122-1146)의 장릉(長陵)에서 '황통 6년'(皇統六年. 1146)의 기록이 있는

 인종의 시책(諡冊)과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참외 형태의 몸체에 치마처럼 주름 잡힌 높은 굽다리가 달려 있으며 입구는

 여덟 잎의 꽃 모양으로 벌어져 있습니다.


 목 부분에 가로로 세 줄이 음각되어 있을 뿐 다른 장식은 없습니다.


이러한 양식은 중국 송대(宋代)부터 유래하였으나, 중국 것에 비해

 훨씬 온아하고 단정한 곡선과 비례를 보입니다.


 회청색에 옅은 녹색이 감도는 듯한 반투명의 청자유가 고르게

시유되어 고려 비색(翡色)의 표본을 보입니다.


단아한 기형(器形)과 고도로 정선된 유약과 태토가

 고려청자 최성기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청자 음각 연꽃 넝쿨 무늬 매병(고려시대 국보 97 호)




연꽃무늬를 감싸고 있는 넝쿨무늬의 윤곽선은 조각칼을 뉘여서 음각하였기

때문에 반쯤 양각(半陽刻)된 것처럼 보입니다.


고려청자에 사용된 음각기법은 초기에는 가늘고 예리한 음각 무늬 이지만,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중엽이 되면 이처럼 선이 굵어지고 반 양각된 것처럼 처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청자 상감 모란 무늬 항아리(고려시대 국보 98 호)



고려시대에는 청자와 더불어 각종 동기(銅器)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청자의 기종(器種)과 기형(器形) 가운데 같은 시대에 사용된

 동기를 그대로 청자로 옮겨 만든 것이 많습니다.

 

이 청자 항아리도 그런 예 가운대 하나이며, 양쪽에 달린 동물 모양 손잡이는

 동기의 디자인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높이가 20.1cm로 고려청자 중 드물게 큰 그릇인데, 서울과 경기도 지방에서 방구리라고 불리는

 질그릇과 크기나 형상이 매우 비슷하며 음료(飮料)를 담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몸체 양면에 모란꽃을 상감하였는데 크고 시원스러운

 그릇 모양과 문양이 잘 어울립니다.


 백상감된 모란꽃의 꽃술과 꽃잎 둘레를 매우 가는 흑선으로 처리하였고

 음각선으로 세밀하게 꽃잎 맥을 표현하였습니다.


꽃 부분의 백토 상감은 매우 두터워서 일부 부풀어 오른 곳도 있습니다.


 맑은 녹색이 감도는 회청색 유약이 전면에 얇고 고르게 입혀져 있으며,

 유약의 투명도가 높고 광택이 청아합니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청자 음각 모란 상감 보자기 무늬 뚜껑 매병(고려시대 보물 342호)



매병은 뚜껑을 덮을 때 몸통과의 마찰로 인한 파손 위험을 줄이고 장식 효과를 더하기 위해

 아마도 어깨 위에 수를 놓은 보자기를 덮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효과를 얻고자 목을 중심으로 네모반듯한 보자기를 씌운 것

 같은 보자기 무늬를 상감하였습니다.


장식이 많은 것 같으나 전체 디자인이 단순해 보이며 특히 상감 장식을 어깨 부분의 보자기

무늬에만 넣고, 음각무늬는 중간 부분 이하에만 한정하여 디자인을 이원화시켰습니다.

























청자 상감 매죽학문 매병(고려시대 보물 903호)




서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이 매병에는 마치 꿈 속 정원을 거닐 듯, 대나무와 매화가

 어우러진 신비로운 공간이 잔잔이 펼처지고 그 사이에 학들이 날거나 쉬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넓고 시원한  무늬 배치와 정밀한 새김 수법을 가진 상감 청자는

 전북 부안군 유천리 가마터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청자 상감 모란 무늬 매병(고려시대 보물 346 호)



 고려 청자에 동화(銅畫)기법(주성분이 구리인 안료를 사용하여 무늬를 그린 후 구워내면

 무늬가 선홍색으로 나타나는 기법)을 이용하여 무늬를 나타낸 경우는 매우 드물고,

 이처럼 매병을 장식하는데 사용한 예는 더욱 찾기 어렵습니다.


몸통에는 모란가지 세 개를 흑백상감으로 묘사한 후 꽃잎에

 동화기법으로 붉은색을 입혀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청자 철화 양류문 통형 병(고려시대 국보 113 호)



 完存. 兩面에 楊柳를 暗褐筆彩. 全체 黃褐色이나 楊柳下部에 黃綠色 있음.


 칠화 청자의 특징인 대담한 의장과 구도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다른 칠화 청자에 비하면 무늬가

비교적 간결하지만 버드나무를 재구성하여 다른 차원의 세련미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렇게 독특한 형태의 통형병은 청자의 기형 가운데 이례적인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모란 버들 갈대 무늬 매병(고려시대 보물 345호)





이 백자 매병은 동체를 여섯 면으로 나누고 각각의 중심에 모란 . 갈대 . 버드나무가

들어간 능화창을 상감기법으로 시문 하였습니다.


능화창과 어깨 및 굽 주변에 돌아간 연꽃잎 안을 청자 흙으로

 채워 아름답게 장식하였습니다.


매병을 굽는 과정에서 동체 일부가  틀어졌으나,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입니다.   





















청자 철채 퇴화 잎 무늬 매병(고려시대 보물 340 호)



청자 태토로 매병 형태를 만든 후 철화鐵畫 안료를 칠하고, 다시 몸체 양면에 잎 무늬 부분만을

 얇게 파낸 뒤 그 위에 백토白土를 바르고 청자유약을 입혀 구운 작품입니다.


이처럼 여러 번 공정을 거치는 철채鐵彩 상감기법은 12세기 전반기부터

나타나고 있으나 그 예가 매우 드뭅니다.


 소담스러운 어깨의 곡선은 매우 유려하고 몸체에 그려진 잎 무늬에는 백토를

 바른 붓질이 잎맥처럼 자연스럽게 남아 있습니다.


 대담하게 내리그은 백색의 줄기 끝 부분과 철채한 흑색의 대조 또한 절묘합니다.


 흑黑과 백白의 대비와 소박한 잎 무늬의 표현, 백토를 바른 붓질에 운치가 배어나며 

굽 접지면에 내화토를 받쳐 구웠습니다.


이와 유사한 파편들이 강진 대구면 사당리 가마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구름 용무늬 항아리 (조선시대 국보 259호)



 당당한 양감과 풍만함이 돋보이는 이 항아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인화 기법과 상감 기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분청사기의 활기차고

 건강한 미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분청사기 박지 모란 무늬 자라병(조선시대 국보 260 호)


 모습이 자라를 닮아 있어 자라병이라고 부르는 이 병은 끈을 매어 휴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여행용 물병이나 술병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주로 옹기로 만들었던 생활 용기이므로 분청사기나 백자로 된 것은 많지 않습니다.


이 자라병은 몸체의 바탕 위에 백토를 씌워 본바탕을 희게 분장한 후, 모란 무늬를 그리고

무늬 외에 바탕을 칼로 긁어내어 그 무늬가 도드라지도록 표현하였습니다.


긁어낸 바탕은 철분이 많은 안료顔料를 붓으로 덧발라 구웠기 때문에 바탕색이 검은빛을

 내어 모란꽃이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시각적 효과까지 높였습니다.


 대담하고 활발한 모란의 구성과 여백을 메꾼 흑갈색의 철채 장식 등이 어우러져 다른

 분청사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잘 나타냅니다.


 같은 시대 백자에도 이런 자라병이 간혹 보이지만, 이 병처럼 높이가 낮고 원형의

 두 면을 위아래로 맞붙여 완성한 형태는 흔하지 않습니다.






















조화 어무늬 자라병 (조선시대 국보 178호)



백토를 두껍게 입히고 조화기법으로 무늬를 새긴 분청사기 편병입니다.


앞 뒷면과 옆면에 서로 다른 무늬와 위로 향한 두 마리의 물고기를

 생동감이 넘치는 선으로 나타냈습니다.


양 옆면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위와 중간에 4엽 모란무늬를 새기고, 배경을 굵어 냈으며

 아랫 부분에는 파초를 새겨 넣었습니다.


물고기 무늬는 분청 사기 조화수법의 특징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데 "조화수법"이란

백토로 분장한 그릇에 선으로 음각의 무늬를 새겨 넣고 백토를 굵어내어 하얀선으로 된

 문양을 만드는 기법입니다.











 












분청사기 상감 물고기 무늬 매병(조선시대 보물 347호)



조선 초기에 제작된 매병으로 청자에서 분청사기로 넘어가는 과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매병입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려 말 상감청자에 가깝지만, 무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도장을

찍어 무늬를 넣는 인화(印花)기법의 비중이 높아지며, 유약도 비교적 밝은 회청색으로

변모된 점이 두드러집니다.


 이 매병의 어깨 위쪽에는 연꽃잎 모양의 띠를 간략하게 표현했고,

 그 아래에는 넝쿨 띠를 상감하여 둘렀습니다.


몸체의 4면에는 구슬 무늬로 둘레를 장식한 두 겹의 원을 그리고 그 안에

파도 무늬를 배경으로 물고기 두 마리씩을 상감하였습니다.


 원 밖에는 점을 가득 찍어 채우고, 위쪽 4곳에는 학 네 마리를 상감하였고 허리의 좁은 구획 안에는

 꽃과 풀을 추상화하고 그 아래에는 연꽃잎 모양의 띠를 상감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유약은 청자유에 가까운 담청색을 띤 분청유粉靑釉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매병의 복잡한 문양 구성과 유약은 기형과 더불어 청자에서 분청사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자 상감 연꽃 넝쿨 무늬 대접(조선시대 국보 175호)



고려 연질 백자의 계통을 이은 작품으로, 조선시대 상감백자 중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선시대 상감백자가 대개 유약이 거칠고 상감 솜씨도 미숙한데 비해, 이 대접은 마무리가 깔끔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잘 표현하였으며 무늬를 나타낸 수법도 섬세합니다.


단정한 도자기 형태에 맞게 간결하게 표현된 넝쿨 무늬는 중국 원말~명초 청화 백자의

 문양과 유사하며, 문양의 선은 예리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대접의 생김새는 중국 명나라 초기 대접과 매우 닮았지만 상감기법이나

 유약의 특징은 고려백자의 전통을 보입니다.


경기도 광주의 분원 관요에서 15~16세기경에 제작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백자병(조선시대 보물 1054호)




풍만하면서도 단정함과 기품이 느껴지는 형태와 옅은 청색을 머금은 맑은 백자 유약이 잘 조화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병으로 이러한 백자는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에 걸쳐 경기도 광주 일대의

 도마리(道馬里) 가마, 무갑리(武甲里) 가마, 우산리(牛山里) 가마 등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백자 청화 매화 대나무 새 무늬 항아리(조선시대 국보170호)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매화, 대나무, 새를 그린 청화백자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기 청화백자에서

 보이던 중국적인 화려한 문양은 사라지고 이처럼 조선의 정취를 자아내는 문양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중앙의 무늬는 청화 안료의 색깔이 짙고 강한 반면, 뚜껑과 아랫부분, 주둥이 주변의 무늬는

 의도적으로 색을 옅게 함으로써, 그림의 입체감과 사실적인 효과를 높였습니다.


조선 관요의 청화백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궁중의 화원畫員이 담당하였고, 그 결과 조선 백자는

 이 항아리처럼 우아한 화격畫格을 갖춘 걸작품들이 많이 양산되었다.


이 항아리는 원숙한 필치筆致로 한국적인 정서가 돋보이는 대나무와 새, 매화나무를 세련되게

 묘사하였으며, 문양에 회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백자 끈무늬 병(조선시대 보물 1060 호)



조선 전기 백자 병 특유의 풍만한 양감과 곡선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잘록한 목에

한 가닥 끈을 휘감아 늘어뜨려 끝에서 둥글게 말린 모습을 철화 안료로 표현하였습니다.


 단순하면서도 많은 여백을 남긴 여유 있는 묘사와 거침없이 그어 내린 힘찬 선은 절제된

 필치로 장인의 숙련된 경지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백과 무늬의 절제된 표현과 구성은 도자 공예의 차원을

 뛰어넘은 세련된 예술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망설임 없이 사선 방향으로 힘차게 그어 내린 끈무늬는 단순하지만 그릇 전면에 걸쳐 강한 인상을

 주며 굽 안 바닥에는 철화 안료로 「니나히」라고 쓴 한글이 있습니다.


 그 뜻은 명확치 않으나 한글 창제 전후의 작품일 것으로 짐작케 해주는 근거가 됩니다.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조선시대 국보 166호)



 품격있는 정중한 형태와 뛰어난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16~17세기의 대포적인 철화 백자입니다.


백자의 품질과 그림의 표현 수준으로 보아 도화서의 화원이 무늬를

 그린 왕실용 철화 백자로 여겨집니다.


당시 화단의 사군자 표현 기법을 가늠할 수 있는 수작입니다. 





















백자 투각 모란문 항아리(조선시대 보물 240 호)



18세기 도자기들 가운데 단순하고 간결한 작품이 오늘날 다수 전하는데 반해 이 작품은

 기면 전체에 베푼 투각 장식이 강렬하고 당당하여 매우 이례적입니다.


입은 반듯하게 서 있고 어깨에서 급히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지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커다란 항아리 속에 작은 항아리를 포개 놓은 듯한 내외 이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안쪽 항아리에는 문양이 없고, 바깥 항아리에는 표면을 뚫어 조각하는 투각기법을 활용하여

활짝 핀 모란꽃을 비롯하여 줄기와 잎을 화려하기 그지 없게 표현하였습니다.


모란당초문 아래 허리 밑부분에는 여의두문(如意頭文)을 양각하였고 어깨 위쪽으로는

 청화 안료로 당초문대를 작품 전체가 화사해 보이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유약은 푸른 빛이 감도는 맑고 투명한 백자유이며,

안굽에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습니다.


 이 작품에 사용된 장식 기법인 투각은 조선 전기에 드물게 사용되다가 이후 19세기에

 들어서 필통이나 연적 등의 장식에서 활용되는데, 손이 많이 가는 기법이기 때문에

 투각 백자는 귀한 편입니다.


 대범하면서도 은근한 세련미를 풍기는 도자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연적(조선시대 보물 1329 호)



초대형 팔각 연적으로 각 면에는 소상팔경(瀟湘八景) 무늬가 있습니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중국 후난 성(湖南省) 둥팅 호(洞定湖) 남쪽의 샤오수이(瀟水)강과

 샹장(湘江)강 주변의 여덟 가지 절경을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조선 후기에는 청화백자의

 무늬 소재로까지 확산되었습니다.


 물을 버리는 구멍이 있는 면에는 그림은 없지만 대신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는 소상팔경도의 제목과

 ″송하문동자 장한강동거(松下問童子 張翰江東去)″라는 시가 있습니다.











 











백자 철화 포도원숭이문 항아리(白磁 鐵畵葡萄猿文 壺  조선시대 국보 93 호)



조선 후기 철화백자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걸작품으로 몸통 전면에는 여백의

 미를 살려 포도넝쿨과 원숭이를 나타냈습니다.


 철화 안료가 짙게 설채(設彩)됨으로 인해, 발색이 강해지면서 약간씩 번지거나 뭉그러져 섬세한 묘사가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철화 안료의 깊고 진중한 색과 온화한 유백색 바탕 그리고

 능란한 구도가 함께 어울려 원숙한 세련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운현」이 새겨진 백자 청화 넝쿨 무늬 항아리(조선시대)와 백자 청화 당초문 병(조선시대)






















백자 청화 꽃 무늬 조롱박 모양 병(조선시대 보물 1058 호)



둥근 항아리를 8모로 깎아 면面을 만들고 그 위로 목이 긴 병을 얹은 단정한 모양의

 호리병으로 조선 백자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순백색 여백의 미를 살리면서 무늬를 적절히 배치하였는데 위쪽에는 길상도안吉祥圖案의

 한 종류인 전보錢寶와 방승보方勝寶를 그려 넣었고, 아래의 각진 면에는 난초와 패랭이꽃을

 담백하고 정갈하게 표현하여 한국적인 정취를 한껏 살렸습니다.


경기도 광주 금사리의 조선 후기 가마에서 만든 것으로 여겨집니다. 
























청동제 투구(고대 그리이스 투구 보물 904 호)




 이 청동투구는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가 기증한 것으로, 서구 유물로는

유일한 지정문화재(보물 제904호)입니다.


이 투구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코린트에서 제작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 올림픽 제전 때

승리를 기원하면서 신에게 바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1875년 독일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올림피아에서 발굴된 이 투구는 실제로 썼을 때 눈과 입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완전히 가려지는 형태로, 고대 그리스 신전이나 기념비에 새겨진 무사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이처럼 완벽한 원형을 유지한 예는 거의 없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마라톤 우승자에게 이 고대 투구를 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당시 이 대회에 출전한 손기정은 42.195km를 2시간 29분 19.2초에 주파해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러나 “메달 이외의 부상을 수여할 수 없다”는 올림픽 규정으로 인해 이 투구는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될 수 없었고, 이후 투구는 베를린 샤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었습니다.


그 후 1986년 베를린 올림픽 50주년을 맞이하여 독일 정부는 옛 우승자 손기정 선수에게 이 투구를

 전달하였고, “이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손기정 선수의 뜻에 따라

이 청동투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