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고향 조지아 고리의 스탈린박물관(2019.8.22)
조지아 고리 스탈린박물관의 스탈린 흉상
소련 공산당 서기장(1922~53)과 국가평의회 주석(1941~53)을 지냈던 소련의 독재자로 국제사회의
차가운 주시와 우려 속에서도 소련을 세계 주요 강대국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공업화와 더불어 농업을 강제로 집단화했으며, 철저한 경찰 테러에
의해 그의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2차세계대전 동안에는 독일을 패배시키는 데 한몫했으며, 소련의 지배권을
동유럽의 여러 나라로 확대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소비에트 전체주의의 최고 설계자였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는 말살되었고
생활수준도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강력한 군사력 배양으로 세계를 핵무장의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흉상·동상·초상 등을 많이 건립해 개인숭배를 강요함으로써 전대미문의
광신적 예배대상이 되었던 그는 20세기 공포정치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고리로 향하면서 차창밖으로 바라다보는 쿠라강 전경
이른 아침 식사를 한 후 바쿠리아니 휴양지 호텔을 떠나
스탈린의 고향인 고리로 향합니다.
산간 능선위에는 이름 모르는 교회들이 아주 견고한 요새처럼 만들어져 있는게 바라다 보입니다.
일직 국교로 승인된 카톨릭과 이 지역으로 진출하려했던 오스만 트르크의 이슬람세력이
심하게 다투던 지역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쿠리아니에서 1시간20여분 걸려 도착한 고리시가지 전경
우측의 스탈린 박물관 전경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북서쪽 76km 지점에 있는 철도의 분기점인
"고리"에는 스탈린 박물관이 있습니다.
스탈린시대에 고딕양식으로 1951년에 건축된 거대한 2층 건물인 이 박물관에는 스탈린의
어린시절부터 청년기,공산당 지도자로서의 활동 등 연대기적으로 순서에 따라 분류되어 있으며
스탈린이 읽고 썼던 책들,책상,의자.입었던 의복,개인 소장품,세계 각국 인사들에게 받았던
선물등 실제로 사용하고 소장했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스탈린동상 전경
스탈린의 고향 조지아 고리 생가옆에 세워진 박불관 정원의 스탈린 동상 전경
스탈린의 고향인 조지아 고리에는 스탈린 박물관이 있습니다.
스탈린이 태어나서 3살 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그를 기리는 박물관과 타고 다니던 열차
그리고 생가 모습을 큰 건물을 지어 그 안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무수한 조지아인들이 숙청을 당했었는데도 그를 기리는 박물관과 그의 생일날에는
이 동상 앞에 꽃이 수북이 쌓이고 도심에선 아직도 그를 기리는 집회 행열이 이어진다고하니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스탈린 통치가 끝나고 러시아로부터 1991년 4월 9일에야 독립을 이룬 조지아 정부는
그루지아(러시아명칭)란 나라 이름대신 대신 조지아(영어식)로 국가명을 변경했습니다.
박물관 안쪽 자택 생가 후면 앞에 세워진 스탈린 동상으로 스탈린은 항상 손을 왼쪽
호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 양쪽 팔 길이가 다르며 한쪽 얼굴에 흉터가 있고 발가락
3개가 없었으며 단신이었다고 합니다.
워낙 무서운 인물이었던지라 서양인들은 키가 커서 거인인 줄 알았다고하는데,
실제 그의 키는 154cm 단신이었다니 웃음이 나옵니다.
생가 후면 정원에 세워진 스탈린의 동상앞에서
스탈린박물관 안쪽 회랑전경
스탈린박물관 회랑 바닥에 뒤베져 누운 개
조지아의 개팔자도 터키랑 무척 비숫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수량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ㅎ
스탈린박물관 회랑에서
스탈린박물관 출입문 전경
박물관 1층 내부홀 전경
스탈린박물관 관리사무실 전경
1층(관리층)과 2층(전시실) 사이 중간 계단에 세워진 스탈린동상
스탈린의 본래 이름은 조지아어로는"이오세브 베사리오니스 제 주가슈빌리"였던 스탈린은
1878년12월 18일 조지아의 고리에서 구두 제화공과 신기료 장사를 하던 아버지 "베사리온 주가슈빌라"
재봉사였던 어머니 "에카테리네 겔라제"의 셋째 아들로 태어 났습니다.
어린시절 그는 알콜중독자에 술주정꾼인 아버지에게 무자비한 구타와 폭행을 겪으며
자랐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분개한 스탈린은 아버지에게 대들며
칼을 던졌다고도 했으며 이런 아버지를 경멸하고 증오했던 스탈린은 주변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7살에 천연두에 걸린 스탈린은 사경을 헤매기도 하였으나 기적적으로 살이났지만 천연두를
손과 바늘로 짠 탓에 그의 얼굴은 곰보가 되었는데 후에 그가 러시아를 통치하던 시절에는
천연두 자국을 모두 편집하였다고 합니다.
1894년 15살에 그는 장학금을 받고 조지아의 트빌리시에
소재한 트빌리시 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트빌리시 신학교는 조지아 정교회에서 운영하는 신학교로 트빌리시 신학교에서 스탈린은
성직자 교과목 외에 문학과 역사, 라틴어 , 수학, 그리스어등 폭넓은 교육을 받았고,
성적은 우수하였다고 합니다.
트빌리시 신학교 1학년 재학 중 스탈린은 지역 신문에 시를 발표했는데,
그루지아 문인들과 지역 유지들을 감동시켜 격찬을 받았습니다.
그가 시에서 다룬 주제는 대지와 자연, 민족정신 등이었다고 합니다.
신학교 2학년 이후 그는 조지아를 지배하고 있는 러시아에 반감을 가지고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 러시아인을 만드는 교육을 강요하는 스승들과 마찰이 잦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를 마르크스 ,플레하노프,블라디미르 레닌등의 공산주의 서적을 접하면서
종교와 민족보다는 마르크스주의를 중시하게 됩니다.
동시에 제국주의와 종교적 질서에 대한 혁명을 꿈꾸게 되는데 가정 환경이 어려웠음에도
재학 중 성적이 우수하여 장학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학교 성적은 좋은 편이었으나, 재학 중 그는 국제 공산주의의 최고 이론가인 카를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등이 쓴 저서와 다른 금서들을 비밀리에 탐독하다가 신학교에서 그는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혔고 비밀 결사조직인 "메사메 다시"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신학교 졸업 전 해인 1899년 말 스탈린은 기말고사 시험을 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트빌리시 신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당시 신학교의 문서에는 그가 수업료를 낼 수 없어서
퇴학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설에는 그가 마르크스주의에서 세계를 다르게 해석하는 방식을 발견하여
미련 없이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혁명가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혁명 활동을 하다가 퇴학 처분을 당하였으나,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몸이 쇠약해져 중퇴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바랐으나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어머니의 뜻을 저버렸는데 신학교를 떠난 직후 스탈린은 레닌의 저작과 관련 서적들을
폭넓게 읽었고 마르크스주의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을 합니다.
20대 초반의 스탈린은 1902년부터1903년 무렵 러시아 육군 군복제조사 미싱공으로 일하던
첫사랑 여인 에카테리네 스바니제를 만나게됩니다.
1906년 7월 스탈린은 스바니제와 결혼하였고 후에 아들 야코프를 얻었습니다.
신혼여행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했지만 마냥 행복했던 스탈린에게 가난과 외로움으로
고생했던 예카테리네는 결국 병이 들어 사망하게 됩니다.
40살 (1919년)의 스탈린은 국가정보통제담당 인민위원(보안담당 장관)에 임명되었고
그 해 나데즈다 알릴루예바와 재혼하였으나 1932년 공개 석상의 여러 사람 앞에서 폭언을
퍼부었다는 모멸감에 나데즈다 알릴루예바는 그날 밤 자신의 침실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합니다.
공산주의 운동가, 노동운동가가 된 스탈린은 존경하던 레닌을 만나게 되었고
레닌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1921년부터 소련의 국가 원수인 '레닌'이 병석에 누워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때
스탈린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병든 레닌의 의사를 무시하고 능멸하였습니다.
그 후 1924년 1월 21일 레닌이 죽은 후 스탈린은 그를 성대한 장례식을 치른 뒤 준(準)비잔틴
식으로 우상화했으며 1924년 1월 21일 부터 집권과 군부 장악, 경제 개발 정책, 반 혁명 재판과
권력 강화 (1936~1939), 소련 총리 (1941~1945),2차 대전 후반, 2차 대전 종전, 한국전쟁등을
거치면서 1953년3월5일까지 소비엩, 연방의 최고 권력자가 됩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1953년 3월 1일 공산당 정치국원 4명과 만찬을 하던 도중에 쓰러졌고
죽기직전 자신의 건강상태를 폭로하거나 암살당할 것을 우려하여 자신의 주치의들을
숙청하였으며 별장에 도착한 뒤 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4일만인 1953년
3월 5일에 숨졌습니다.
조지아 중부의 도시인 '고리'는 시다카르틀리 주의 주도이며
스탈린의 출생지(1878년 12월 18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12살(1891)에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하였던
스탈린은 왼쪽 팔을 못쓰는 영구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1층과 2층을 이어주는 계단 중앙홀에 매어달린 샹들리애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
사실 스탈린은 김일성을 지원하여 우리나라가 6.25란 동족상잔을 겪게 만든 놈이기에
괘씸죄로 스탈린의 코를 잡아보는 시늉을 해봅니다.ㅋ
이런다고 분은 풀리지 않겠지만 그냥 곱게 박물관을 돌아보려니 조금 부아가 치밀더군요,
각종 선물들
중국인민해방군 2 야전군이 보낸 축하생신 깃발로 제 짐작에는 시안에 있는
팔로군이 전신인 부대가 보낸 것으로 유추해 봅니다.
제 불로그 하단부 검색창을 통하여 시안의 팔로군청사에 관하여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초상화
소비엔트 연방의 나라들 문양
이제 박물관 내부관람을 마치고 스탈린의 어릴적 생가와
스탈린의 전용열차를 보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