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시그나기의 성 니노가 묻혀 있는 보드베교회(2019.8.20)
알자리니평원 언덕위에 세워진 보드베교회의 정원에서 바라다 본 아름다운 풍경들
주차장 건너편 보드베교회의 순례자 휴계실
보드베교회 주차장 전경
성녀 니노가 묻혀 있는 시그나기 보드베교회 출입문 전경
보드베 교회의 내부 출입문 전경(※ 내부 촬영금지)
보드베교회는 시그나기 남쪽 2Km 지점의 알라자니 평원의 언덕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4세기 조지아를 기독교 국가로 만든 성 니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9세기에 건축되었고
17세기에 재건된 성녀 니노의 보드메 수도원 전경입니다.
성 니노는 포도나무 가지를 자신의 머리칼로 묶은 십자가를 만들어 들고 므츠헤타에서부터
시작하여 조지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선교를 했다고 합니다.
조지아의 종교를 기독교로 개종한 성인으로 트빌리시 와 카케티 지역에 복음을 전했던 니노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았고 므츠케티에 매장 하려고 하였으나 시체가 움직이지 않아 이곳에 묻혔고
그 위에 보드베 교회와 수녀원 니노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포도나무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녀 니노의 이콘(성화)
보드메교회의 내부 전경
정교회의 특징은
* 십자가를 위,아래,오른쪽,왼쪽의 순서로 긋습니다.
* 이콘(성화)을 숭상합니다.
* 서서 미사를 드립니다.
* 악기 반주가 없이 성가를 부릅니다.
* 성직자는 반드시 독신이 아니어도 됩니다.
* 여자 신도는 반드시 미사포를 착용해야 합니다.
제대쪽의 이콘과 화려한 장식들
성녀 니노의 무덤은 교회 안쪽의 작은 예배실 안에 있었습니다.
평평한 바닥에 시신을 묻어 평장을 하고 그 위에 대리석을 얹어 장식을 하였습니다.
성녀 니노(조지아어: 츠민다 니노)는 때로는 성녀 누네 또는 성녀 닌니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를 설교하고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래한 여성으로 조지아의
"사도와 동등한 니노"라고도 불리며 "깨달음을 주는 자 니노"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니노(296~338년경 또는 340년경)는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나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이 있었고, 일생을 처녀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베리아에서 인내와 애덕, 그리고 기적을 행함으로 존경받았습니다.
황궁으로 보내진 그녀는 왕과 왕비를 개종시켰는데 왕과 왕비는 후일에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사제들과 주교들을 파견해 줄것을 요청했습니다.
니노는 조지아에 교회의 설립을 돕고 난 다음에, 여생을 기도하는데
바치기 위하여 은수자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역사적인 존재와 그녀의 업적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고,
니노는 무수히 많은 소설과 전설의 소재가 되어오고 있습니다.
니노는 원래 카파토키아의 공주로 태어났는데 전쟁으로 인해 나라와 왕실이
황폐화가 되어 노예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전쟁의 혼란을 피해 고국을 떠났고 평화로운 조지아에
와서는 전쟁 포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죽어가는 아이에게 그녀의 두건을 씌워줌으로 소년을 치료했고, 소년을 감싸 안고
기도해주었는데 이러한 기적적인 소식은 조지아의 왕비에게 전해졌습니다.
왕비는 알수 없는 불치병에 걸려있어서 니노를 불러달라고 애원했지만 니노는 "저는 노예이기에
저의 신분으로는 궁전에 들어 갈수 없습니다."라고 하여 왕비가 니노를 직접 찾아갈 수 밖에 없었고
그녀는 기도로 여왕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왕실 가문은 니노에게 어떤 보상을 바라는지 물어보았는데 그 녀는 사람들의 개종을 바랐습니다.
니노에게서 병에 치유된 왕비는 그녀의 뜻을 받아들였으나, 마리안 왕은 반대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이 사냥을 하던 중에 그 자신이 짐승들에게 포위가 되어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때 생명의 위험을 느꼈던 그는 하느님과 한 가지 거래를 하였습니다.
그가 살아남으려면 개종의 제의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조건이었는데 왕은 이를 받아들여 생명을
구할수가 있었었고 325년에 왕은 조지아 전역에 믿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사제들과 주교들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게 이르렀습니다.
종탑과 보드베교회
4세기 성녀 니노가 묻힌 자리위에 마리안왕은 작은 교회를
건립하였고 17세기에 재건축 되었습니다.
1823년 벽화장식과 대대적인 수리가 이루워졌고 신학교가 건립되었으며
1885년 교회 종탑건물이 건립되었습니다.
1924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 당시 수도원이 폐쇄되고
병원으로 사용된 적도 있었습니다.
알자리니 평원을 배경으로
앞에 보이는 빨간 지붕으로 덮여진 계단길을 800여m 정도 내려가면 거룩한 샘
(Holy Spring)이 있다고하나 시간 제약으로 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종교인이 아니다보니 이런 교회에 오면 종교시설 내부의 사진촬영을 제한 하는 곳은
그렇게 큰 관심은 없지만 이런 아름다운 경치는 참 좋아합니다.
바라만 보아도 좋은 시그나기 알자리니평원의 넓은 들녘은 이 지역이 왜 포도가
잘자라는 지역인지 이해가 될수 밖엔 없었습니다.
이제 이 곳 시그나기 여행을 마치고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