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밀교의 발상지 시안 흥선사(2019.5.23)
중국 밀교의 발상지 시안의 흥선사 대웅보전 전경
흥선사는 265년부터 289년까지 창건된 중국 밀교의 발상지로
시안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입니다.
당대에 역경원이 설치되어 불교의 경전을 번역하였기에 수 많은 승려들의 발길이
이어진 곳으로 이 곳에서 수양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흥선사는 3세기 말에 창건되었다고 하니, 서안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입니다.
수나라 때 사찰을 크게 중수하고 흥선사라고 불렀는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몇 번이나
파괴당해 1949년부터 현재까지 사찰불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절은 인도에서 당나라 장안으로 온 승려들이 거주했으며,
이곳에서 역경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불공삼장不空三藏(705~774)이 흥선사에 머물며 번역을 했던
밀교 포교지로도 유명합니다.
노란색의 기와는 왕족들이 드나들었던 사찰을 의미합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사상으로 3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유·불·도 3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와 도교는 중국 내부에서 형성된 것으로 종교적인 차원보다는 자신을 수양하고,
부모에게 효를 다하며, 국가에 충실한 인간적인 기본 원리를 받침으로 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포용성을 가진 사상이다 보니 어느 나라로 유입되던지 간에
큰 마찰이 없었는데 즉 어떤 나라로 불교가 전래되었을지라도, 그 나라의 전통적인
사상이나 종교와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도 이전의 전통 샤머니즘과 결부된 것이 한국불교이고 티벳도
이전의 티벳문화와 결부된것이 티벳불교이며, 중국도 중국 토양성이 강한
중국불교의 특색을 띠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당나라 때는 중국역사상 문화면으로도 뛰어났지만,
불교철학이나 사상체계도 고도로 발달했습니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 1천여년간에 걸쳐 다라니를 제외한
모든 경전은 한문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특히 당나라 때, 현장·보리유지·의정 등 수많은 역경승들에 의해 경전이 한역화 되었는데,
이 번역된 대장경을 중심으로 중국불교가 성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도는 학파불교이지만, 중국은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종파불교이다.
중국은 당나라 때에 번역된 경전을 중심으로 8종이 형성, 발전하였습니다.
천태종(수나라 때 형성)·삼론종·선종·화엄종·계율종·정토종·법상종·밀교입니다.
시안 흥선사 천왕전 전경
천왕전 양 옆으로 세워져 있는 당나라시대의 석각 사자상
포대화상
흥선사 안내판
천왕전 후면
대웅보전에 모셔진 오방오불 전경
대웅보전에 모셔진 5불로 부처의 손모양이 다다르게 모셔져 있는데
지닌 의미도 다 다르다고 합니다.
불공의 법을 이어받은 8대 제자 중 한 분이 신라의 혜초스님(704~787)이라고 합니다.
혜초스님이 이 곳으로 유학을 와서 불교를 배우고 해로와 육로를 통해서 인도를
다녀 왔으며 그 것을 기록한 것이 왕오천축국전입니다..
흥선사는 신라시대 원광법사와도 인연이 깊은 절로 원광은 이 곳에서
섭론종의 논서들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사리탑
일본승려 공해의 입상
공해대사의 상 하단에 적혀 있는 기록에 의하면, ‘공해가 복건성 개원사에서 장안으로
올라와 흥선사에서 수행을 하고, 그 후 청룡사로 옮겨 갔습니다.
공해대사가 중국에 입당한지 "1200년을 기념해 이 상을 세운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2004년).
불공 삼장은 북인도 출신으로 15세에 금강지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스승 금강지의 뜻을 받들어 밀교경전의 범본을 가지러 다시 인도에 들어가
밀교경전 1200권을 가지고 중국에 돌아왔습니다.
당나라 현종· 숙종·대종 황제들은 궁중에 내도량을 설치하여
머물게 하며 법문을 청했습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금강정경』,『발보리심론』등 110부 143권에 달하고 그의 제자는
엄청 많은데, 혜과(惠果)·혜량(慧朗) 등 6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습니다.
혜과는 불공삼장의 제자로서 20세에 출가하여 불공을 따라
금강계를 공부하고 번역에 함께 종사했습니다.
밀교의 조정(祖庭)사찰이라 불리는 청룡사에서 주했기 때문에
‘청룡화상’이라고 불리웁니다.
당나라 덕종과 순종의 귀의를 받았으며 많은 제자를 지도했습니다.
또한 제자 중 한 승려가 일본 진언종의 개조인 공해(空海)대사(774-835)입니다.
공해는 혜과(惠果)로부터 금태양부의 관정을 받고 순밀의 전법대아사리위를
얻어서 진언밀교의 법을 이어 받았습니다.
공해는 장기간의 유학예정을 바꾸어 다음해 806년 10월에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그는 돌아갈 때 불구佛具 9종, 금태양부만다라도상 10축, 아사리부촉물 13종,
경궤논소장 216부 460권을 가져갔습니다.
그는 고야高野산에 금강봉사金剛峰寺와 교토에 동사東寺를
중심으로 일본진언종을 창종했습니다.
금강봉사는 현재 일본 진언종의 총본산이며 세계문화유사에 등재된 사찰입니다.
보현전
단향나무로 제작된 천수천안관음보살상
문수전
그림을 그리로 온 시안의 젊은 미술학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