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진시황의 사후 세계를 지키는 병사들.2(병마용 2호와 문물전시관, 진시황릉 2019.5.22)

뽀다구 2019. 6. 29. 11:37











3호갱에서 발굴한 마차로 문물전시관에 모형으로 전시된 마차모형






















병마용박물관 1호와 3호갱을 돌아본 후 2호갱으로 향합니다.






















제2호 갱은  병사들의 움직임이 3개의 갱 중 가장 역동적인 곳으로 기병은 안장과 고삐를

 갖춘 말을 몰고, 한쪽 무릎을 꿇은 궁수가 전방에 포진했습니다.


 전차는 오른쪽 측면에, 기병은 왼편을 맡았고 중앙에는 보병이

 직사각형 대형으로 분산돼 있습니다.











     







































도기로 만들어져 매장된 호위병들은 무덤 바깥 벽으로부터 1.2㎞ 정도 떨어진 곳에서

 전투태세를 한 채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진이 천하를 통일하기 이전에 동쪽에서 침입해온 강력한 적수로부터

 시황제를 보호하는 형태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능 서쪽의 또다른 장소에서는 중국에서 이제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청동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청동기는 머릿부분을 금·은으로 장식한 4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인데, 차일을 드리운 채

 각기 행정관들을 태우고 있었으며 크기는 실물의 반 정도입니다.


또 하나의 부속 동굴에서는 말의 뼈로 가득 찬 지하 마구간, 장군들의 묘지,

 70개의 개인 매장지, 그밖에 공예품들이 출토되었습니다.

























병용은 키가 184cm에서 197cm로 큰 편이며,

 장군을 병사보다 크게 만들었습니다.


 병마용은 전사, 전차, 말, 장교, 곡예사, 역사, 악사 등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발굴한 4개 갱도 중 3곳에 모두 8천여 점의 병사와 130개의 전차, 520점의 말이 있다고 추정하며,

 아직도 발굴하지 않은 상당수가 흙 속에 묻혀 있습니다.




























병마용의 병사들은 장인들에 의해 머리, 몸통, 팔, 그리고 다리가

 각각 제작된 후 결합되었습니다.


연구 결과 제각기 다른 얼굴을 위해 8 종류의 틀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부위도 각기 여러 종류가 있어 이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형태의 병마용을 제작한 것이지요.


다리 부분은 대부분 동일한 형태로 같은 틀을 사용하여

 대량 생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립을 위해서는 각각의 부분을 맞춘 뒤 다음 과정으로 넘겨주는 생산 공정에

 따른 조립 라인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최근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 기와의 생산과 같은 일상 생활 용품의 제작에서도

 이러한 생산 라인이 존재하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병마용은 살아있는 듯한 모습의 등신대로 제작되었으며

 얼굴 부위에는 채색의 흔적이 있습니다.







1호 갱은 1974년에 발경되었는데 14,260㎡면적에 진용약6,000구와 전차40여대가 발굴


2호갱은 기병과 근위대의 용병이 발굴


3호갱은 1976년에 발굴되었는데 완전발굴된 520㎡ 의 3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되는데

 장군의 것으로 보이는 채색된 전차 1량과 갑옷을 입은 보병64건, 마용4건,

진용74건,전차1대가 출토되었습니다.


4호갱은 병마용이 없는 빈갱도



























장교 병마용의 옷차림은 일반 병사와 약간 다른 것이 흥미로운데 계급이 높은 병마용을

 보면 목에 긴 스카프를 맸습니다.
























장교 병마용의 미소와 후면의 중국인 관광객의 미소가 묘한 동질감을 주는......ㅎ 




진나라 때 남성의 평균 신장은 158cm였는데, 병마용은 170~180cm이니, 실제 사람보다

 크게 만들어진 셈인데 1호 갱의 일반 병사는 평균 173cm, 3호 갱은 180cm로, 계급의 차이를

 키로 표현한 점도 흥미롭습니다.



























2호갱의 병마용모형관에서 모형들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찍어 봅니다.


이 모형관은 관광객들을 위하여 병마용 모형관을 만들어 병마용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든 곳으로 물론 사진을 찍는 장소 사용료는 별도로 지불해야만하는 곳이 랍니다.ㅎ



























그래도 병마용박물관에서 가까이 다가 가기가 어려운 병마용들을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만져도보고

 사진을 찍을 수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기에 ......ㅎ











 









 








  사진촬영을 위한 모형전시관

























문물 전시관 전경





3개의 갱에서 발굴된 테라코타 병사들과 청동 전차 및 무기를 전시해 놓은

 문물 전시관도 빼놓아서는 안될 볼거리입니다.


 특히 1980년에 진시황릉 묘역 부근의 봉분에서 발굴한 청동 마차 2량이 볼 만합니다.


진품은 아니지만 진시황이 내세에서 사용할 용도로 만든 전차가

 아주 멋지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두컴컴한 문물전시관 전시실에서 재 조우한 중국인처자





시안의 후이족 야시장거리편에서 제가 고루앞에서 사진을 찍어 주었던 중국인 처자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던 절강성 항주에 산다는 중국인 처자입니다.


이 처자는 혼자 시안과 돈황쪽을 돌아보는 여행을 한다고하였는데 오늘 또 이렇게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조우를 하게되더군요.



어두컴컴한 전시실에서 저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하기에 저도 무척 놀랬습니다.


이 넓은 중국땅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보니.....ㅎ


반가운 마음에 다시 그 처자를 앵글에 담았지만 암튼 묘한 인연이란 생각이.....




























  진시황릉상 부근에서 경내 이동 버스를 타고 진시황릉으로 향합니다.























진시황릉상앞에서 동상의 흉내를 내는 중국인여자 관광객
























진시황릉묘역 출입구 전경

























세계 문화유산 진시황릉(秦始皇陵)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불가사의한 무덤입니다.  

 

마오쩌둥이 생전에 “공자보다 더 위대하다.”라고 평가했던 인물이 진시황(秦始皇, BC 259~210년)으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던 시황제는 38년간 70만 명을 동원해 사후에

묻힐 지하 궁전을 조성했습니다.


 진나라의 도성이었던 셴양(咸阳)을 모방해 지었는데, 총면적이 56.25㎢에 달하며

병마용 박물관에서 1.5km 떨어져 있습니다.


 현재의 고고학 발굴 기술로는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발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무덤 내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앞으로 50년 동안 발굴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진시황릉 내부는 사마천이 쓴 <사기(史记)>에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무덤 천장에 천체를 그렸고, 바닥에는 진나라 제국의 지리를 묘사했으며,

 수은을 사용해 강과 바다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무덤에 매장된 진귀한 보석과 유품을 지키기 위해서 침입자가 나타나면

즉각 석궁이 발사되도록 설계했습니다.


무덤 입구를 영원히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서 축조 공사가 마무리되자 인부 모두를

 산 채로 매장했다는 기록도 전해옵니다.

1980년대 물리학적 조사를 통해 <사기>의 기록이 신빙성 있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무덤 안 12,000㎡ 구역에 수은이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으로 2007년에는

 무덤을 덮고 있는 흙 표면으로부터 35m 아래에 능묘 건축의 핵심인 ‘지하 궁전’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진시황릉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는 무궁무진한데 내부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없을 뿐더러 76m 높이의 봉분(封坟)을 밟고 올라가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습니다.


 병마용 박물관 입장권을 구입하면 진시황릉도 포함되는데,

직접 눈으로 확인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진시황릉 (秦始皇陵) 전경


지금 전면에 바라보이는 나무가 심어진 작은 동산이 중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 건설에

 착수한 진나라 최초의 군주 시황제가 묻힌 곳입니다.


 그는 죽음에 대비해 50㎢에 달하는 무덤 부지와 그 속에

 묻을 부장품들을 마련해두었습니다.


1974년 3월 농부들이 처음으로 지하에 묻힌 방을 발견했는데 뒷날 고고학자들은

 6,000구가 넘는 실물 크기의 병사와 병마 도용을 찾아냈지요.


실제의 마차, 철제 농기구, 청동 및 가죽 재갈, 비단·아마·옥·뼈 등으로

 만든 물건들이 출토되었습니다.


 또 활·화살·창·칼과 같은 무기들과 13가지 성분을

 합금한 주형도 출토되었습니다.


 3개의 방이 더 발굴되었는데, 그중 한 방에는 1,400개가 넘는

 도용이 더 작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방에는 진군의 정예 지휘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 68개의 상이 들어 있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빈방이었습니다.


시황제의 무덤 자체는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으나 아마도 4면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흙둔덕 바로 아래, 내벽 안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이 피라미드형 흙둔덕은 원래는 낮고 숲이 우거진 산처럼 보이도록 조경된 것으로

 능 내부는 광대한 지하궁전으로, 각지에서 징발된 70만여 명의 일꾼들을 동원해

 36년이 넘게 걸려 완성했다고 합니다.


역사가  사마천(司馬遷:BC 145경~85경)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매우 깊은 지하까지 파들어갔다. 그들은 청동으로

 바닥을 깔고 그 위에 관을 안치했다.


그들은 궁전·누각·집무실의 본을 만들고 멋진 그릇, 값진 석재와

 진귀한 물건들로 묘지를 가득 채웠다.


기술자들은 침입자가 나타나면 석궁이 자동적으로

발사되도록 장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중국의 여러 강, 예컨대 양쯔 강[揚子江]과 황허 강[黃河], 심지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까지

 수은으로 만들어 흐르게 하고 기계적으로 순환되도록 장치했다.


 반짝이는 진주로 천상의 성좌를 천장에 설치하고, 금·은으로 새를

 만들었으며 옥을 쪼아 소나무를 만들었다.


마차는 바닥에 진열했다.


등불은 고래기름을 연료로 써서 영원히 탈 수 있도록 했다".


이 유적지에서 발굴작업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뒤 고고학자들은 진시황릉에서

 나머지 보물을 완전히 발굴해내려면 아마도 몇 세대가 더 소요되어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진시황릉은 높이 76미터 넓이 350 평방미터에 이르는 흙으로

 조성된 거대한 피라미드인 것입니다.


 리산에 대한 발굴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7년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원격 탐지 장치를 이용하여

 내부에 벽이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진시황 무덤 앞에서 인증 샷을 남겨봅니다.


사실 진시황의 진짜 무덤이라지만 그냥 나무가 심어진 작은 동산이다보니

 가까이 가본다 한들 그닥 볼거린 없습니다.


그렇다고 능위로 올라가지도 못하다보니.....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