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원한 사랑의 안식처 타지 마할 .2(2018.12.3)

뽀다구 2018. 12. 24. 15:38











타지 마할 내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다가 우측 측면에서 바라다 본 전경



무굴 제국 황제인 샤 자한이 아내인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 영묘는 뭄타즈 마할('선택받은 궁전'이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이

전와되어 타지 마할이라고 합니다.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은 1612년에 황제와 결혼한 뒤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반려자로

 지냈으나 1631년 부란푸르라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타지 마할은 인도,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등지에서 온 건축가들의

공동 설계에 따라 1632년경에 착공되었습니다.


 매일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1643년경에 영묘가 완공되었고, 1649년경에는

 모스크·성벽·통로 등 부속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타지 마할 전체가 완공되기까지는 22년의 세월과

 4,000만 루피의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높이가 75미터, 돔 부분의 무게만 1만 3000톤 이상 나가는 타지마할은 건축 공학의

기적을 이룬 것은 물론 이슬람과 힌두교 문화, 페르시아 문화를 융합해 당대 최고의

 예술적인 완성도를 이룩한 건축물이었습니다.


 뭄타즈 마할은 한 남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의 증표를 받은 것이지요.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초상화( 참고 사진)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참고 사진을 통하여 타지마할의 일부 내부 전경을 보여드립니다.

따라서 제가 찍은 사진이 아니기에 다소 화질이 좋지 않습니다.


















영묘의 내부 전경( 참고 사진)



















제일 중앙의 작은 뭄타즈 석관과 조금 벗어난 좌측의 조금 큰

샤 자한 가짜 대리석 석관( ※ 참고 사진)



영묘의 내부는 8각형 방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얕은 부조 무늬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된 이 묘실에는 황제 부부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대리석 무덤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되어 있으며, 여기저기에 보석을 박은

 투각한 대리석 막이 둘러처져 있습니다.


정원과 같은 높이에 있는 지하 납골당에는 진짜 석관이 있다고 합니다.



네 개의 작은 정자와 연결된 중앙홀로 들어가면 보석을 넣어 정교하게 가공한

 덩굴 장식 뒤로 유골이 없는 가묘가 있습니다.


이 가묘는 지하에 있는 진짜 무덤의 도굴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조명이 없으므로

빛이 투과되도록 정교하게 새겨진 병풍석이 공간을 신비스럽게 만드는데 빛의 흐름을

 따라가면 가묘 주위에 박혀 있는 43개의 준보석이 영롱하게 반짝거려 신비로움을

 더해줍니다.

뭄타즈 마할의 유해는 한 층 아래의 지하묘에 안장되어 있으며

 샤 자한의 유해도 함께 있습니다.


원래 샤 자한은 야무나강 건너편에 타지마할 같은 자신의 묘를 검정 대리석으로

 건설해 견고한 황금다리로 타지마할과 연결할 계획이었지만 그의 거창한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샤 자한은 국민들의 세금을 올리지 않고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산을 이용해 타지마할을

건설했지만,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ēb, 1618~1707)는 샤 자한의 무차별한 재산 낭비가

 왕국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왕위를 찬탈했습니다.


타지마할은 정원의 나무에 이르기까지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도록 설계되었는데

석관이 유일하게 대칭을 깨고 있습니다.


샤 자한은 원래 강 건너편의 타지마할과 마주 볼 수 있는 곳에 검은 대리석으로 된

 똑같은 건물을 지을 생각이었으나 그의 사후 수많은 가족을 살해하고 황제가 된 아들

아우랑제브가 그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대신 그는 아버지의 시신을 영묘 중앙에 있는 어머니 석관 왼쪽에 안치했습니다.


 중앙에는 어머니의 석관이, 그 왼쪽에는 아버지의 석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석관은 천국을 찬미하는 코란의 경구가 장식하고 있지만

 실제 시신은 지하 납골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샤 자한은 생애 마지막 8년을 아그라성에서 보냈는데 그래도 아우랑제브는

 아버지의 소원 하나는 들어주었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위대한 사랑의 증거를 아그라성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한 것이지요.

아그라성은 악바르가 건설한 성으로 높이 20미터, 폭 2.5킬로미터의 대형 요새였으나

 샤 자한이 황제가 된 후 평화정책을 견지해 타국과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궁전으로 바꾼 것입니다.


근래 외벽 문양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발견되었는데 “세계가 멸망하고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이 부활할 것이다.”라는......



















 가짜 관 주위의 병풍 담장 ( ※ 참고 사진)




















영묘 내부의 화려한 돔의 문양( 참고 사진)




















타지마할 우측 내부 통로는 어둡고 제재하는 사람이 없어

제가 사진을 찍었으나 어두운 탓에.....ㅎ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출구쪽 일부 구간 통로 내부 돔의 천정과 창호 전경






















사실 하얀 대리석에 꽃과 줄기 문양이 새겨진 것들이라서 그렇게 화려하게 느껴지지는

 않아 보였는데, 이런 연유는 이 영묘를 지을 때에 샤 자한의 사비로 지은 탓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진 않았다는 생각이......


















타지마할 내부를 돌아보고 나오게 되는 출구
































 야무뉴강 모래 톱에 수많은 철새들이 타지 마할의 슬픈 사랑을 위로 하듯

 아름다운 군무를 .......




















야무누강에서 찍은 사진 3장 (※ 참고 사진)




3장의 참고 사진은 야무누강에서 찍은 일몰,일출과 반영 사진으로  모래 톱이 있는 얕은 강쪽으로

 낙타를 타는 투어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강 건너편에서 지는 저녁노을을 담으면 좋으리란 생각이 들지만,

 패키지여행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아쉬움만 남습니다.






















자와브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인도 관광객들 전경



 영묘의 동서 양쪽에는 완전 대칭을 이루는 2개의 건물이 붙어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은

 모스크이며 동쪽의 것은 미학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운 이른바 '자와브'입니다.


모퉁이에 8각형 탑이 솟아 있는 높은 벽이 북쪽 구역과 중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 울타리 밖에는 마구간과 경비병 숙소가 있습니다.


무굴 제국의 건축 관행은 나중에 증축하거나 개축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통일체로서 타지 마할을 구상하고 설계했다고 합니다.


이 복합체의 북쪽 끝에는 영묘·모스크·자와브 등의 가장 중요한 건물들이 모두 모여 있습니다.


붉은 시크리 사암으로 지은 모스크와 자와브에는 대리석을 두른 돔과 아키트레이브(평방)가

 있으며 일부 표면이 단단한 돌(pietra dura)로 장식되어 있어, 순수한 하얀색 마크라나

대리석으로 지은 영묘와는 색깔과 감촉에서 아주 독특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와브 앞에서















대리석으로 된 벽을 장식하기 위해 샤 자한은 아프가니스탄 · 티베트 · 중국 · 펀자브 · 페르시아

 · 예멘 · 유럽 · 아라비아해 등으로부터 산호 · 옥수 · 얼룩마노 · 벽옥 · 수정 · 청금석 · 터키석 등을

 사들였으며 많은 상인들에게 다이아몬드 · 자철광 · 홍옥수 등을 구입해 오도록 했습니다.


400킬로미터 바깥에서 코끼리가 끄는 수레에 실려 운반된 타지마할의 우윳빛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 등에 따라 갖가지 오묘한 색을 발산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중앙의 긴 못은 이슬람의 코란에 등장하는 풍요로운 천국의 연못을 상징하며 샤 자한은

타지마할 공사 중에 야무나강의 물줄기를 바꿔 타지마할을 거쳐 흐르게 했다고 합니다.



















인도 젊은 처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어 봅니다.


 제 짐작에 이런 처자들은 입은 사리로 보아서 인도에서는 제법 잘사는 집안의

 배운 처자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이들의 발을 보면 맨발로 이 타지마할을 돌아본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도인들에게 이런 성스러운 장소는 맨발로 당연히 걸어야하는 곳이기에......  



















친구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인지라 화상이 흔들렸는지 화질이 나쁜.....ㅎ


















영묘에서 바라다 본 타지마할의 출입문 전경



















모든 인도인들은 이렇게  신발을 보관하고 맨발로 입징을 해야하기에

신발보관소마져도 어수선하기가 ......ㅎ


















타지 마할을 관람하고 나오다가 바라다 본 타지 마할 측면전경


















무굴제국이 최고 전성기를 구가할 때 건설된 타지마할은

끊임없이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은으로 만든 출입문은 녹여지고 대신 구리 문이 세워졌으며

수많은 귀금속들이 약탈되었습니다.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인들은 돔의 금박을 떼어내고 구리로 대체했으며 인도 독립 후

 지속적인 복원사업으로 타지마할은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았지만 아그라에 산재한 200여 개의

주물 공장에서 뿜어내는 독가스 때문에 흰 대리석 기념비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특히 타지마할 주변 자연환경의 변화가 타지마할을 심각하게

 기울게 만들어 자칫하면 붕괴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인도인 모자의 반영























 시크교도인듯한 인도인을 배경으로 타지마할을 앵글에 담아 봅니다만,

 포커스가 인물에 집중이되다보니 타지마할은 희미한...... 

















타지마할을 돌아보고 출입문으로 나오다가 다시 마주친 아름다운 인도 처자들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어 봅니다.


이들에게 저는 낯선 이방인이지만 이들은 좋은 사진을 저로 부터 얻을 수 있고 저는 이 들을

돈도 안주고 모델로 쓸수 있으니 서로 윈윈하는 것인지라.....ㅎ 


가장 중요한 점은 저의 사진 솜씨를 인정했다는게 맞는 표현이겠지만......

























타지 마할의 관람을 마치고 강 건너편의 아그라성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