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명13능을 찾아서(2018.9.21)
세계 문화유산 명13릉(明十三陵) 명나라 황제와 황후의 무덤군중
정릉에서 발견된 금실로 만들어진 익선관 전경
쇼핑센타의 전시홍보물
용경협을 돌아보고 나서 용경협식당가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잠시 들린 패키지여행
상품에 있는 쇼핑판매점으로 라텍스와 보석을 취금하는 곳입니다.
선전 입간판으로 세 종류의 로보트를 홍보물로 세워 놓아 조금은 이채롭습니다.
라테스와 보석 판매점 전경
사실 올 해만 들어 중국여행을 세 번째 왔기에 중국 상품중에서 딱히 살 물건들이 없다보니
그리 큰 관심은 없습니다만 이 것도 좋은 경험이고 볼거리란 생각에.....ㅎ
299,0000원이라는 싼 가격에 북경을 여행하다보니 뭐 이런 정도는
감수하고 즐겨야되지 않겠습니까?
암튼 호화롭게 잘 치장은 해놓았습니다.
파는 물건들은 전혀 흥미가 없기에.......ㅎ
주차장 한켠에는 노란 꽃이 피어 있었는데 제 짐작에
이 꽃은 돼지감자꽃 같다는 생각이......
정확한지는?
명13능 초입에 세워진 무자비 전경
명13능은 베이징 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톈서우 산(天寿山)에 230년에 걸쳐
조성된 명나라 황제와 황후들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40만㎢면적에 조성된 묘역을 보면 톈서우 산이 동 · 서 · 북면을 포근하게 감싸고,
남쪽으로는 환하게 트여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당나라의 황릉을 본떠 산을 등지는 형태이면서도, 산을 깎아 묘역을 조성하는
당나라와는 달리 산 앞쪽 땅을 파고 들어가 지하 궁전을 지었습니다.
명13릉에는 총 13명의 황제와 29명의 황후, 1명의 귀비가 잠들어 있습니다.
명나라는 17대 황제까지 이어졌는데 13명만 이곳에 있습니다.
초대 황제인 주원장은 당시 수도였던 난징의 효릉에 매장되었습니다.
2대 황제는 전란에서 실종되었고, 6대 황제와 8대 황제는 동일 인물입니다.
명13릉은 난징의 효릉(孝陵)과 함께 2000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13개 황릉 중 관람객에게 개방한 것은 수도를 베이징으로 천도한 3대 영락제의 장릉과
묘역 조성에 가장 많은 국가 예산을 쓴 14대 만력제의 정릉, 아담한 규모로 조성된
12대 융경제의 소릉, 3곳뿐입니다.
그러나 통상적인 패키지여행의 경우 이 곳을 방문하면 패키지여행에서는
정릉만 돌아보게 된답니다.
이 번 여행에서도 예외는 없었던 탓에 오래 전 여행에서 돌아 본
정릉을 또 돌아보게되는 불운이......ㅜㅜ
명13릉 박물관 전경
매표구 전경
박물관 건물 외벽의 벽화
명13능 분포도
13기의 능묘군을 가진 명13능은 조화로운 일체이면서 동시에 황제마다
각자 독립된 공간을 보유하였습니다.
13기의 능은 크기가 다르고 건축양식도 다르지만 건축구도와 급별은 유사합니다.
무덤은 묘실과 산수, 식물과의 조화에 신경을 써서 자연이 만든듯한 완벽한 경지에 이르면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철학적 사상을 구현하고 중국전통문화의 풍부한 내적 함의를 잘 보여줍니다.
황제마다 산 하나를 끼고 무덤을 조성했는데 명나라 마지막 황제의 무덤인 사능이 서남쪽으로
치우친 외 다른 11기의 무덤은 모두 최초의 무덤인 장능을 둘러싸고 양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명13능에 관한 한글 설명판
AD 15세기초 쿠테타를 일으켜 황권을 빼앗은 중국의 한 황제가 그 때의 도읍이었던 남경에서
황제의 보좌에 앉을 담이 없어서 북상해 북경을 새로운 도읍지로 정하고 베이징의 북쪽에서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자신의 묘지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 뒤로 200년동안 그의 후손들도 이 곳에 자신들의 묘지를 만들어 오늘날 이 곳에는 13개의
제왕능이 생겨났는데 이 거대한 능을 후세의 사람들은 명13능(明十三陵)이라고 부릅니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에 등재된 명 13능 중 장능(長陵)과 정능(定陵)이 대표적입니다.
13릉은 명나라 황제 13명이 잠들어 있는 대규모 제황릉묘군(帝皇陵墓群)으로
일명 명 13릉이라 불리워 집니다.
정릉 안내도
정릉 안내판 전경
이 표지판은 우리나라의 관광객들이 이 곳을 많이 찾아 온다는 방증으로 이왕 한글 안내판을
부착했다면 맞춤법에 맞는 한글 표기가 되어야할듯 하지만 사드 사태로 얼어붙은 한중 관계로
관리직원한테 시정하라고 말도 못하니.....쩝!
정릉(定陵)
무려 48년을 제위에 올라 명나라를 통치한 만력제의 무덤으로 6년에 걸쳐 자신의 묘역을
조성했는데 당시 국가 예산의 2년치에 해당하는 800만 냥을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완성된 능묘가 마음에 쏙 들어서 지하 무덤 안에서
축하 연회를 열고 즐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0세에 등극한 만력제는 장거정(张居正)이라는 훌륭한 대신의 도움으로 사회 발전을 이룩했지만,
장거정 사망 이후에 황태자 책봉 문제로 조정 대신들과 대립하면서 무려 25년 이상 공식적인
접견과 조회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군대를 파견해 우리를 도왔으나 명나라 입장에서는
멸망의 물꼬를 터 준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장릉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지하 궁전을 돌로 견고하게 쌓아 올렸으며 다량의 부장품이
발굴된 곳으로, 중전(中殿)에 대리석으로 만든 황제와 황후의 옥좌가 놓여 있습니다.
지하 궁전에서 나와 명루(明楼)를 돌아보고 아래로 내려가면
‘명13릉 박물관(明十三陵博物馆)’이 나옵니다.
황후의 화려한 복식과 금으로 만든 주전자와 수저통, 청화백자를 비롯해
금실로 만든 익선관(翼善冠)이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익선관(금으로 만든 실관)
정릉의 주인인 만력제와 두 황후의 초상화
정릉에서 출토된 부장품들 전경
황후의 황관
갑옷
황검
황제의복
황후의 복장
정릉의 모형
황후의 황관
벽면을 뚫고 성장하는 나무들
빨간색 표시가 붙은 나무들은 300여년이 넘은 나무
정능으로 내려가는 지하계단 전경
명신종(明神宗)의 무덤인 정능은1956년부터 1958년까지 사이에 지하의 묘실을 발굴해서
지하박물관을 조성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3능 중 지금까지 발굴된 지하묘실은 정능이 유일합니다.
정능의 지상건물은 앞쪽이 모나고 뒷쪽이 둥글게 설계되어 하늘은 둥글고 땅을 모나다는
중국의 고대 철학사상을 구현합니다.
세 겹으로 된 뜰을 거치면 높은 보성(寶城)이 있고 이어 비석이 있으며
그 뒤로 지하묘실이 위치해 있습니다.
지하궁전은 앞쪽과 가운데, 뒷쪽,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 다섯칸에 걸친
웅장한 규모의 묘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둥근 천정의 묘실은 벽과 천정, 바닥 모두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심지어 문도 화강암입니다.
지하묘실의 돌문 7개는 모두 교묘하게 설계되어
돌문의 무게를 문틀에 두었습니다.
하여 4톤이나 나가는 무게의 돌문이지만 한 사람이
한 손으로도 쉽게 열수 있습니다.
정능의 지하궁전은 지하 27m 되는 곳에 있는데 이 높이는
9층 건물의 높이와 비슷합니다.
지하궁전은 앞(前), 중앙(中), 뒤(後), 왼쪽(左), 오른쪽(右)에 위치한 다섯개의 천정이 높고
탁 트이게 넓은, 서로 연결된 궁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하궁전은 모두 돌로 된 석실로 중앙의 건물에는 3개의 한백옥 보좌가 있고 그 앞에는
큰 독이 있는데 그 독은 참기름이 담겨진, 장명등(長明燈)입니다.
뒷쪽의 건물은 지하궁전의 핵심건물로 이 곳에는
만력황제와 두 황후의 관이 놓여져 있습니다
23년전에는 관 배치도가 있어서 관에 누워서 발견된 황후의 사체 뼈 그림과 주위에 웅크려
산채로 매장된 두 시녀들에 대한 부장품도가 전시되어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보이지가 않는.......
정능의 입구를 가리켰던 표지석
명루 전경
명루는 명조 황능의 대표적 건물로 이 건물에는
능 주인의 묘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명루의 왼쪽과 오른쪽 양옆으로 담이 원형을 이루며 흙더미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 흙더미가 보정(寶頂)이고 보정아래는 황제와 황후의 관이 모져진 지하궁전입니다.
명루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능 전체가 한 눈에 안겨오고 앞쪽은 네모나고 뒷쪽은 둥근 형태입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고 하면서 이런 건축구도는
황제가 사후 천국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고 여겼습니다.
1950년대, 고고학자들이 장능의 지하궁전을 발굴하려 시도했지만 아무리 해도 지하궁전의
입구를 찾을 길이 없었는데 고고학자들은 먼저 다른 능을 선택해 시험적으로 지하궁전을
발굴해 최대의 능인 장능에 대한 파괴를 최소화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선택된 능이 13능에서 세번째로 규모가 큰 정능으로 정능에는 명 만력(萬歷)황제와
두 황후가 묻혀 있는데 건축구조가 장능과 아주 유사합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고학자들은 발굴과정에 역시 지하궁전 입구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하게 신비한 작은 돌 비석을 발견했는데 그 돌비석이 지하궁전을 여는 키였고
돌비석에는 정능 지하궁전 입구의 위치가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작은 돌비석의 인도를 따라 순조롭게
지하궁전에 들어갈수 있었다고 합니다.
능을 판 사람들이 왜 작은 돌비석을 남겨 후세의 사람들이 지하궁전을
찾도록 했을까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만력황제는 22살부터 이 능을 파기 시작했고 6년뒤인 28살때 능을 완공했습니다.
하지만 만력황제는 58세때 세상을 하직하어 능이 완공되고부터 만력황제가 하직하기까지
30년동안은 먼저 빈 채로 능을 봉하고 황제가 세상을 뜬 다음 다시 문을 열어 황제를
안치해야 했었는데 그 때 입구를 찾지 못할까 우려해서 이런 돌비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명루 성곽 전경
정릉 주변에 가장 많이 심어진 나무들은 역시 노간주나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재미난 사실은 자금성과 천단 주변에도 매한가지로 많이 심어져 있어서 이 나무가
중국 명 황실과 몬 연관이 있는지가 무척 궁금합니다.
이 정릉의 명루 성곽을 보니 23년 전의 옛추억이 쌩각납니다.
저희와 함께 이 곳을 같이 여행을 했던 일행중에 이 곳 안쪽의 후미진 곳에서
담배를 피웠던 분이 한 분 계셨는데 이를 발견한 빨간 완장을 찬 중국 관리 아줌씨가
이를 발견하고는 벌금을 물리려고 씩씩거리며 쫓아가던 모습이 생각이나서......ㅋ
물론 문화재 구역내에서 담배를 피웠던 분의 큰 잘못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과도한 벌금이 나오기에 안내려고 도망친 분과 숨박꼭질하던 모습은
지금 생각을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결국 숨는 바람에 벌금을 부과받지는 않았지만 이런 문화재에서 담배를 피운 잘못으로
도망을 다녀야했던 그 분은 아마 평생 잊지를 못할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를 여행 하실 때 이런 망신스런 행동들은 가급적 삼가해야하겠기에
우스개 삼아 올려드립니다.
영선문 앞의 신도 전경
영선문 전경
영선문은 귀신들이 드나드는 문이니 신도라고 보시면 정확할 듯 합니다.
월대 전경으로 계단의 대리석 마모로 인한 보호를 위해
철판으로 덮어 보호를 하는.....
능은문앞의 비석정자에는 글자 한 자 없는 돌비석 무자비(無字碑)가
거북 잔등에 세워져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잔등에 비석을 떠멘 거북 만지기를 좋아하는데 거북을 만지면
즐거움만 있고 건강을 유지할수 있다는 전설때문입니다.
오래 전에는 만질수 있었으나 지금은 보호를 위해 철책을 두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