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왕궁과 대통령궁(2017.9.14)
부다왕궁 전경
부다 지역의 남쪽 언덕에 자리한 부다 왕궁은 재건과 파괴가
반복된 수난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3세기 후반 벨러 4세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고, 몽골 군의 습격을 받아 파괴된 것을 15세기
마차시 1세 때 재건하였다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서 다시 파괴되었다가 17~18세기에 재건
및 확장 공사를 하였으나 헝가리 독립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대대적인 개축을 시작하여
1904년에 완공하게됩니다.
그러나 왕궁 건설의 기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폭격으로 무너졌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왕궁보다는 박물관의 성격으로 다시 복원되었으나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여러 건물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푸니쿨라 타는 곳과 마주하고 있는 왕궁 입구에는 거대한 청동상이 있는데,
이것은 헝가리 민족의 상징인 전설의 새 "투룰(Turul)"입니다.
투룰에 의한 전설은 다양한데 일반적인 내용은 헝가리 민족의 시조인 알모시의 어머니가
태몽으로 꾼 것인데, 꿈에 투룰이 나타나 태어날 아이가 위대한 민족의 훌륭한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여 집니다.
또 마자르 민족의 지도자가 꾸었던 꿈에도 투룰이 나타나 독수리에게 공격받는
그들의 말을 구하고 지금의 헝가리 영토로 인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다 왕궁의 투룰 조각상은 유럽에서 가장 큰 새 조각상이기도 합니다.
현재 부다 왕궁은 국립 현대 미술관, 루드비크 박물관, 부다페스트 역사 박물관,
국립 세체니 도서관(유료)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통령궁 전경
대통령궁 앞의 화단 전경
대통령궁을 지키는 수비대 전경
부다왕궁쪽에서 바라다 본 대통령궁 전경
푸니쿨라(Budavári Sikló 부다바리 시클로) 타는 곳
헝가리 민족의 상징인 전설의 새 "투룰(Turul)"
줌으로 당겨 본 헝가리 국회의사당
줌으로 당겨 본 세체니 다리
1839년부터 10년 동안 지어진 다리로, 도나우 강에 있는 8개의 다리 중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다리이자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합니다.
부다와 페스트 지역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하면서 지금의 부다페스트로 통합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다리 앞뒤에는 4마리의 사자 조각상이 있기 때문에 "사자 다리"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세체니 다리와 함께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 마차시 교회가 배경으로 보이는
야경 또한 부다페스트가 자랑하는 관광 포인트입니다.
사자상의 전설
세체니 다리의 사자상을 조각했던 작가는 자신이 조각한 사자상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 컸다고 합니다.
완벽한 사자상에 흠이 있다면 자신은 바로 이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조각가는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부모에게 왜 사자의 혀가 없냐고 묻는 것을 듣고 그때서야 자신의 실수를 알고
도나우 강에 투신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후 사자의 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세체니 다리는
헝가리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체니 다리 후면의 성 이슈트반 대성당 전경
부다왕궁과 대통령궁의 경계인 담장
부다왕궁 전경
왕궁 앞뜰에 있는 말을 탄 청동상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호자였던 사보이 가문의 "유진(Eugene)"왕자로
헝가리가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을 때 헝가리를 독립시킨 인물이라고 합니다.
헝가리 국립 미술관(Magyar Nemzeti Galéria)전경
헝가리 미술이 집대성된 미술관으로 헝가리 귀족이었던 에스테르하지가에서 모은 회화들과 조각,
그래픽 등 수많은 헝가리 미술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입니다.
15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7만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유명한 화가가 많이
배출되었던 19세기 중반에서부터 20세기 초반의 헝가리 작품들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헝가리 민족의 상징인 전설의 새 "투룰(Turul)"
투룰은 독수리 날개와 용의 몸으로 칼을 잡고 있어 용맹성을 나타내는 미자르인 전설속의 새이지만,
제 생각으로는 투르크족의 매사냥 문화가 이 곳 헝가리로 스며든 흔적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사현장의 가림막에 그려진 기마상을 바라 보아도 중세 서유럽과는 조금 다른 기마상같아 보이는데
이 헝가리 지역이 오스만 트르크가 점령을 한 지역이다보니 다문화와 혼재된 까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다왕궁 후면의 부다지구 주택들
이제 페스트지구로 이동을 하여 그 곳에서 시가지 투어를 한 후
점심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