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생가와 게트라이테 거리(2017.9.9)
모짜르트 생가 복도에 전시된 구켈른 모짜르트 초코릿 모형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모짜르트 구켈론 초콜릿은 1890년 페스트리제과 요리사인
폴 푸르스트에 의하여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다크 초코릿을 동그랗게 만들고 카라멜과 아몬드 등을 겹겹이 싼 초코릿을 말한답니다.
대량 판매를 시작한 것은 잘츠브르크의 미라벨사로 지금도 초기 제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현재 50여개국에 수출도 하고 있습니다.
초코릿 포장지에 모짜르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데 오스트리아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초코릿이긴 합니다만, 본 고장인 잘츠브르크에서의 구켈론 초코릿의
맛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오스트리아 잘츠브르크 지도
Priesterhaus 와 소공원의 조형물
미라벨궁전과 정원을 돌아보고 다음 코스로 향한 곳은 잘츠브르크 구시가지에 있는
모짜르트 생가와 생가 주변의 게트라이테 거리였습니다.
잘츠브르크 신시가지 전경
이 집의 명판을 자세히 읽어보면 카라얀이란 글자가 보이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란 생각이 안드십니까?
바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태생의 관현악단 오페라 지휘자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의
저택으로 20세기 중반을 이끈 세계적인 음악가로 어려서 피아노의 신동으로 음악적 재능을 지녀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에서 공부했고, 이후 1927년 독일 울름에서 지휘자로 데뷔했습니다.
1927~41년 울름과 아헨에서 지휘했고, 1938~45년 베를린 국립 오페라단을 이끌었으며,
1955년 베를린 필하모니의 음악감독이 되었습니다.
나치당원(1933~42)이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재판소로부터 면책을 받았으나,
1955년의 미국 데뷔 공연은 대중의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1950년 후반부터 비엔나 국립 오페라(1956~64, 감독), 잘츠부르크 페스티벌(1956~60, 예술감독),
런던 필하모니에서도 활동했으며 또한 라 스칼라와 밀라노 극장의 상임지휘자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객원지휘자로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1976년에는 잘츠부르크 이스터 페스티벌을 창설했고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1969~70),
1977년 빈 국립 오페라로 복귀하였습니다.
그가 활동한 여러 음악 단체들 가운데서도 특히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활동의 중심이 되었지만,
1983년 이후의 잦은 음악적 분쟁으로 단원들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카라얀의 음악 해석은 정확성과 객관성으로 정평이 나 있으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보다 개인적인 성향을 나타냈습니다.
1908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989년 잘츠브르크 근처 이니프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카라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음악가"로 그를 꼽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가끔은 전혀 엉뚱한 곳에 걸려 있는(예를 들어 "버드와이저"나 "코카콜라"의 포스터가 걸릴 자리에)
그의 포스터를 접하고 놀란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점이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으로 20세기 클래식의 상업화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자기 현시욕과 재물욕이 유난히 강했던 기회주의자가 음악에 집중할 새가 있었겠냐는 것이
그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치운 자본주의 시대의 파우스트로서의 짙은 의혹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20세기 후반, 음악의 몰개성화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라고 몰아 붙이기도 합니다.
저택에 세워진 카라얀의 동상
카라얀의 저택 전경
마르크트다리를 건너는 패키지여행객 일행
이 곳 다리에도 수많은 자물쇠들이.....ㅎ
마르크트 다리에서 바라다 본 잘차흐강 하류 전경
잘차흐강 상류 전경으로 슈타츠다리 건너편 언덕위의
호엔잘츠브르크성이 보이는 우측이 구시가지
잘차흐강을 사이에 두고 좌측이 신시가지
잘차흐강 하류 선착장 전경
행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일행들
게트라이테 거리의 다양한 상품들
다양한 철구조물 간판을 내달아서 간판의 그림만을 보고서도
어떤 상점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게트라이테 거리
게트라이테거리의 다양한 철구조물 간판 전경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유명한 맥도날드 간판마져도 자기 고유의 상점 간판을 포기하고,
이 곳 고유의 철구조물형 간판으로 매어 달려 있는......
구시가지 안쪽의 게트라이테거리 전경
이 게트라이테거리는 잘츠브르크의 상징인 호엔잘츠브르크 성을 향하여 아름다운 쇼핑가를
이루고 있는데 잘츠브르크의 문화적 특성과 매력이 함축된 거리입니다.
거리 양쪽으로 보석가게,꽃집,옷가게 등과 레스토랑,
커피숖 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건물마다 가게의 특징을 철구조물에 매달아 표현한 수공간판들이 많이 달려 있어
독특하고 이채로운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이 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거리로 알려지게 만든 철제 구조물 간판들은
문맹이 많은 중세시대에 무슨 가게인지 알리려고 하는데서 출발하였는데 200여년
이상된 간판들도 있으며 거리 분위기를 맞추기 위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적인
패스트푸드 상점인맥도날드 햄버거 판매점도 철제 구조물 간판을 매달아 놓아서
관광객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모짜르트 생가(현재는 박물관) 전경
잘츠부르그"를 음악의 도시로 만든 두 사람이 있다면 "모차르트"와 "카라얀"을 꼽을 수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잘츠부르그" 출신으로 모짜르트는1756년에 태어나서 "잘츠부르그"에서 20여년,
비엔나에서 15년쯤 살다가 35살에 죽어 너무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626"곡이라는 아름답고 주옥같은 명곡을 남겼는데 교향곡, 오페라, 협주곡,
소나타. 실내악 등 짧은 생에 비하여 다양한 명곡을 만들어 음악의 천재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잘츠부르그는 시내는 온통 "모차르트" 일색으로 패션, 악세사리, 심지어 초콜렛까지도 유명하며
해마다 7월중순부터 한달반 동안 열리는 "잘츠부르그 여름 음악 축제"에는 전 세계에서
음악 애호가 수만명이 몰려오고, 기라성같은 음악 아티스트들이 다거 출연하여
세계 3대 음악 축제가 되었는데 그 축제를 만든 주인공이 베르린 필하모니를 종신 지휘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라고 합니다.
아마 이 두사람이 잘츠브르크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란 생각이.....
.
모짜르트는 불멸의 음악을 후세에게 남겼는데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비엔나에서 생을 마쳤는데
그 당시의 장례 문화로는 평민인 경우 열병으로 사망하였을 경우에는 전염병으로 취급하여
공동 합장을 하였기에 아직도 그의 유해는 찾을 수 없어 공동 묘지내에 가묘를 만들어
추모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매장된 유골들을 대상으로 모짜르트의 남겨진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대조 확인을 하고는 있으나...... )
카라얀은 1989년 84살에 죽어 그의 유언대로 잘츠부르그 인근 고향 마을 "안니프" 교회 묘지에
묻혔는데 억만장자 명성에 비하여 묘지가 너무 작고 초라하다고 합니다.
모짜르트는 전면의 건물 3층에서 1756년1월27일에 태어 났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에서 3층이라 함은 우라나라로 보면 4층으로 보셔야 정확합니다.
박물관 1층: 모짜르트의 침대,피아노,바이올린,자필악보,서신등 전시
2층: 유명한 오페라인 마술피리 초연 당시 사용했던 소품 전시
3층과 4층에는 가족들과 생활하던 당시 중산층의 생활모습 전시
모짜르트 박물관 표지판 전경
모짜르트 생가 입구로 2층 좁은 계단을 통하여 올라감
모짜르트 생가 박물관은 사실 내부 촬영이 불가한 장소였었는데
몇 컷을 찍었기에 참고 자료로 올려 드립니다.
사실 외국여행에 있어서 이런 돌출 행동은 어떤 의미에서 논란의 소지가 되기에 조심스럽습니다만,
재미난 사실은 만약 제가 큰 언론사의 미디어 관계자였다면 촬영은 100% 보장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입니다.
사실 개인은 내부 촬영이 금지되고 큰 미디어이기에 내부 촬영을 허가해 준다면
세상에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서라도 평등해야하는게 세상 이치인데 이런 소도시의 큰 볼 것도 없는
작은 박물관 마져도 양육강식의 세상의 룰을 적용하고 있다는게 서글펐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뭉쳐야 뜬다"는 T.V 프로그램에 비엔나의 쉔부른 궁전을 관람하는
영상전경이 나왔는데 그 곳도 매 한가지였습니다.
사실 그 궁전 내부도 촬영 불가지역이라 저는 사진을 한 장도 찍지를 못하였는데
그럼 왜 이들 미디어 영상팀에게는 촬영을 허가해주었는지 저는 당췌 이해가 가지를 않더군요.
관광객들의 핸폰이나 카메라에서 이상한 광선이라도 나와서 궁전에 손상을 준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곳을 방문한 일반 관광객들이 내부 사진을 찍으면 그 궁전의 가치가
떨어져서 다른 관광객들이 찾아 오지를 않는다고 판단하여 그러는 것인지는.....쩝!
프랑스 베르사이유궁전 내부나 대영박물관의 어떤 보물들도 그 곳을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쉽게 촬영을 할 수가 있는 세상인데 유독 오스트리아란 나라만 베르사이유 궁전
일부 한귀퉁이 밖에 안되는 쉔브른 궁전 내부를 가지고 양육강식의 촬영 문화정책을
펴고 있다는게 마음에 와 닫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 개인 소견이지만 시간이 나면 오스트리아 대사관에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 달라고 건의를 해볼 생각입니다.
벽면에 부착된 모자르트의 구켈른 초코릿 선전 조형물
박물관 안내도
1657년이란 건립 년도가 새겨진 등잔
모짜르트의 출생년도가 1756년이니 태어나기 100년 전에 건축된 건물입니다.
생가 부엌 내부
뒷집도 구입하여 박물관으로 개조 이용
모짜르트 온라인실
불꽃처럼 살다 죽은 음악의 천재 모짜르트 생가는 사실 박물관으로 개조되었으나
내부는 그리 큰 볼거린 없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보관되어진 일부 유품들과 그가 직접 쓴 악보가 전부이다보니
그 당시 생활상 정도를 유추해볼 수 있는 그런 장소 정도로 이해하시면 정확합니다.
음악을 아주 사랑하는 음악도들에게 모짜르트 생가는 성지같은 곳이 겠지만,
저희 같이 평범한 관광객 입장에서야......ㅎ
박물관 내의 레스토랑
모짜르트 생가 앞의 레스토랑 전경으로 옆의 문이 생가 박물관이 있는 골목으로
직접 들어올 수 있는 출입구로 보시면 됩니다.
저희는 미라벨정원쪽에서 카라얀주택 골목쪽을 걸쳐 마르크트 다리를 건너
케트라이테거리로 들어 왔기에 ......
생가를 찾아 온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
역시 이 곳도 매한가지로 우리나라의 모든 여행사가 걸쳐가는 코스이다보니
많은 한국인들도 ......ㅎ
모짜르트 생가 입구 조형물
신시가지의 오래된 고택들
미라벨 정원 앞 신시가지 상점들
미라벨 정원 앞 버스정류장의 잘츠브르크 관광 안내도
잘츠브르크 시가지를 운행하는 트램
이제 이 곳 잘츠브르크 관광을 마치고 슬로베니아 블레드로 향합니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는 귀경할 때 역코스로 거슬러 올라와서 다시 들리는 도시이기에
한 참을 지난 뒤에야 다시 글을 올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