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 흥선 대원군 별서의 매력에 빠지다.1(2017.6.25)
석파정 서울 미술관 상부 잔디광장에 설치된 아름다운 조형물 전경
석파정과 대원군 별서 야외공원 안내도
석파정 서울미술관 3층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바로 눈에 보이는
멋진 한옥이 흥선 대원군의 별서 입니다.
바로 옆에는 서울 미술관 옥상 잔디광장인데 도심속에서 이런 아름다운 조경의 잔디광장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단 의외의 선물이었기에 그 매력속에 흠뻑 빠져 봅니다.
측면의 흥선대원군 별서
소수운렴암각자
김흥근이 당시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 불리웠던 별서를 조영하기 이전에 이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별서 초입 사랑채 맞은편에 커다란 암반이 있고, 거기에 “巢水雲廉菴 寒水翁書贈
友人定而時 辛丑歲也(소수운렴암 한수옹서증 우인정이시 신축세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김흥근의 별서 조영시기 이전의 모습에 대해 추정하게 합니다.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으로, 한수옹(寒水翁)(권상하權尙夏, 1641∼1721)이 벗 정이(定而)
(조정만趙正萬, 1656∼1739)에게 신축(辛丑)(1721, 경종1년)에 글을 써주다’ 라는 뜻의 이 글귀는
매우 운치 있는 시적표현으로 자연을 대하고 노래하는 조선시대 선비의 심성을 느끼게 해줍니다.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오재(寤齎) 조정만의 별서 조성에 관한 기록은 따로 전해지지 않으므로
더 이상 고증된 자료는 없지만, 이 암각을 통해 현재의 위치에 18세기 초 또는 그 이전부터
별서가 조성되어 경영되고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흥선대원군 별서
흥선대원군 별서(興宣大院君別墅)는 조선 말기 문신 김흥근(金興根)의 주도로 조영(造營)된
근대 유적으로서 인왕산 북동쪽의 바위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후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별서(別墅)로 사용되어
흥선대원군 별서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 별서 초입 암반에 새겨진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巢水雲簾菴, 소수운렴암)’이라는
권상하(權尙夏)의 글처럼 빼어난 산수와 계곡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경관과 수려한 건축을 자랑합니다.
옛 한성의 경승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본래 7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던 석파정은 오늘날 안채,
사랑채, 별채와 같은 살림채와 중국풍의 정자 등 4개 동이 남아 옛 조상들의 풍류 문화와
예술적 정취에 대한 이상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흥선대원군 별서는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사랑채 서쪽 뜰에 위치한 노송은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60호로서 유구한 세월 동안
우리 역사와 함께해 온 나무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꿋꿋한 절개와 의지를 잃지 않았던 조선시대 학자와
선비들의 기품을 느끼게 합니다.
인왕산 북동쪽의 바위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흥선대원군 별서(興宣大院君 別墅)는
본래 조선 철종과 고종 때의 중신(重臣) 김흥근(金興根, 1796∼1870)이 조영해 별장으로
사용한 근대 유적입니다.
김흥근이 언제 이곳(당시 삼계동정사로 통칭)을 조영하였는지에 관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일부 문헌을 통해 그 시기를 대략 1837~58년 사이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후일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섭정이 시작된
1863년을 전후하여 대원군이 이를 인수, 별서로 사용하게 됩니다.
조선 후기 학자 황현(黃玹)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에게
별서의 매매를 종용하였으나 거절하자 계략을 세워 아들 고종을 이곳에 행차해 묵게 하였고,
임금이 묵고 가신 곳에 신하가 살수 없다하여 김흥근이 이곳을 포기하자 이에 운현궁 소유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별서 인수 후 대원군은 사랑채에서 난을 치는 등 이곳을 예술적 활동을 했던 장소로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종의 행전이나 행궁, 즉 임시 거처로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본래 7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던 흥선대원군 별서는 오늘날 안채, 사랑채, 별채와 같은 살림채와
석파정(石坡亭) 등 4개 동이 남아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위치한 별채의 구성과 별채로 진입하는 협문, 과거에 있었던 꽃담 등은
왕이 묵던 곳으로서 손색없게 하려는 의도로 읽혀집니다.
별서들 중 흥선대원군 별서와 같이 안채 이외에 별채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현재 남아있는 석파정과 종로구 홍지동으로 이전되어 남아 있는 중국식 별당(석파랑)
역시 흥선대원군 별서의 독특한 특질을 잘 드러내는데, 김흥근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보았던 모습을 이곳에 재현한 듯 합니다.
흥선대원군 별서는 수려한 건축뿐 아니라 빼어난 산수와 계곡으로 이뤄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데 특히 사랑채 서쪽 뜰에 위치한 노송은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60호로서
유구한 세월동안 이곳과 운명을 함께해 왔습니다.
흥선대원군 사후에도 대략 50년간 그의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어 오다가 한국 전쟁이 시작된 후
콜롬바 어린이집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민간에 이양되어 관리되어왔습니다.
1974년 석파정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주)석파문화원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습니다.
서울 미술관 옥상 잔디광장
세검정으로 내려 가는 길로 오래 전 제가 중딩 시절에 세검정 검문소 위 구기동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 시절에는 이 도로로 135번 유성운수 60번 원효여객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철 눈이 많이 오면 자하문 언덕길로 차가 못다녀서 종로통의 학원을 마치고는
추운길을 터덜 터덜 걸어서 가던 생각이 ......ㅎ
흥선대원군 상부 별서로 진입하는 소로
흥선대원군 상부 별서
상부 별서의 후문으로 나가면 바로 구름길로 걸을 수가 있습니다.
구름길 전경
구름길 담벽에는 한국미술계 거장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사진이 많아서 1,2부로 나누워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