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남겨진 아픈 흔적 일본 사찰 동국사(2016.9.16)
한국에 남겨진 아픈 흔적 일본 사찰 동국사 대웅전 전경
비가 오락가락 하는 우중에 선유도를 돌아 본후 다음 코스로 향한 곳은 월명공원이었습니다.
명절 연휴기간 내내 비가 오는 것으로 곳으로 일기 예보가 되어 있었던 탓에 비가 오더라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며 월명공원과 근처의 일본 적산 가옥들이 많은 구시가지를 돌아 본 후
이 곳으로 왔지만 비는 여전히 오고 있는 중이라 우산을 든채로 동국사 경내를 돌아 봅니다.
동국사 출입구 전경
동국사 출입문에 있는 우측 돌기둥에는 차문불문이라는 글귀가 있는데 "이 문은 문이 아니다"란 뜻으로
누구나 드나 들 수 있는 문이란 의미로 1951년 동국사에서 주지 혜초스님을 스승으로 고은 시인이
출가할 당시 들어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글귀라고 합니다.
이 동국사를 돌아보니 고은 시인과 동국사에 얽힌 이야기가 있어서 흥미로웠고
또 제가 몰랐던 고은 시인이 파계승이었다는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동국사 대웅전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 안내판
동국사는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다[內田佛觀]가 1909년 8월 군산의 외국인 거주지 1조 통에 세운 금강선사[금강사]에서 출발합니다. 당시 금강사는 '포교소'로 우치다는 1913년 군산 지역 대농장주 구마모토[熊本利平]와 미야자키[宮岐佳太郞]등 29명의 신도에게 시주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습니다. 1955년에는 '불교 전북 종무원'에서 인수하여, 김남곡[1913~1983]이 이제부터는 ‘우리나라[海東國] 절이다’는 뜻으로 '동국사'로 등기를 내고, 1970년 대한 불교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에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
등록 문화재 제64호인 대웅전은 건축 자재를 일본에서 가져와 지었으며,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과 달리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와 복도로 연결된 것이 특징입니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 팔작 지붕 홑처마 형식의 대웅전은 일본 에도 시대 건축 양식으로 외관이 무척 단조롭습니다. 지붕 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 외벽에 창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한옥과 대조를 이룹니다. 일본 년호로 명치(明治) 42년입니다.
강제 병합이 일본 각료회의에서 결정된 해이며, 마침내 1909년 10월 26일 이에 분노한 민족주의자 안중근 의사님이 중국 하얼빈 역(驛)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いとう ひろぶみ)를 암살(暗殺)한 해이기도 합니다.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일본에 강제 병합(倂合) 시키기 위한 정책들이 가속화되던 때 입니다. 자랑하는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가 되어, 소위 일본 천황 직속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 의해 1945년까지 36년간의 고통어린 식민지배(植民支配)가 시작되었습니다. 외치던 일본은 조선 측에서 일본과의 외교 관계 수립을 거부한다는 것을 명분삼아 공식적으로 정한론(征韓論)을 제기한 이래 메이지 덴노(명치천황.明治天皇) 시대의 과도 정부는 일본 국내에 대륙 침략을 위한 소위 정한론(征韓論)을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였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래 일본 정부는 조선을 무력으로 식민지화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였고, 1894년 청일 전쟁과 1905년의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에 대한 침략을 가시화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그 외에도 엄연한 독립국인 대조선국의 국권을 무시하고, 영일 동맹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으로 제국주의적인 침략을 본격화 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숭상되고 있는 불교를 한국에 가지고 들어와 왜색 불교를 전파 시킨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삼한시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우리의 선진 불교가 식민통치 수단으로 역수입 된 것으로 종교도 국력 앞에서는 무기력 할 수 밖에 없다는 좋은 교훈을 이 곳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 |
동국사 숨은 볼거리 안내판
동국사 경내 전경
동국사 대웅전 내부 전경
보물 제1718호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群山 東國寺 塑造釋迦如來三尊像 및 腹藏遺物)’은
1650년(조선 효종1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 조성주체, 물건 목록 등이 조성발원문에 낱낱이 기록하고 있어
조선 후기 불상연구에 기준이 되는 자료입니다.
불상조성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호연태호(浩然太湖)스님과 벽암각성(碧巖覺性)스님이 불사를 이끌고,
부드럽고 온화한 조각을 구사한 응매(應梅)스님이 조각을 주도하였고 나무로 틀을 짜고 황토를 입혀
만든 소조불로서 사람의 키와 비슷한 147cm와 160cm 정도의 크기입니다.
동국사 삼존상은 본존불인 석가여래불과 가섭존자, 아난존자로 구성되어 다른 절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희귀성이 있고 제작 년대와 봉안처 등의 명확한 자료가 함께 발견되었고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석가여래불의
형식과 가섭존자상의 자연스러운 자세와 생동감 있는 표정이 돋보이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또 이 삼존상에서 발견된 조선중기의 전적류(경전)와 후령통 등 373점도 모두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일괄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좌측 전경
대웅전 우측 전경
보물로 지정된 삼존불상 안내판
대웅전과 연결된 종무소 건물
향적원(전통한옥으로 현재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음)
동국사의 후면의 방공호 방향으로 돌아가 봅니다.
동국사 후면 전경
종무소 후면 전경
군산 평화의 청동 소녀상 전경
청동소녀상의 물에 어린 반영이 애처롭게 바라다 보입니다.
우린 언제까지 이런 서글픈 모습들을 가슴속에 안고 살아가야만 하려는지
왠지 가슴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이런 아픔에서 벗어나는 길은 더 강한 국가를 만들어야하는데
이전투구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을 생각하면 짜증이 납니다.
좀 더 우리 스스로 성찰하여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참사문비
일본불교 조중동에서 발표한 공식문서를 발췌해 새긴 비문으로 일본 제국주의 영합한
잘못에 대한 반성과 참회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동국사 경내에 곱게 핀 상사화
범의 꼬리같은 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정확한지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