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청수사(키요미즈데라)의 아름다운 풍경들(2012.1.20)
교토 청수사(키요미즈데라)의 아름다운 전경
교토의 상징으로 유명한 사찰 청수사의 아름다운 전경 사진입니다.
778년에 백제계 엔칭대사가 오타와 폭포 위에 관음상을 모심으로 창건되었고,
798년에는 백제계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혼도를 건립하여
간무왕(가야와 백제의 믹스 된 혈통)의 촉간지절(왕이 참배하는 절)로 되었답니다.
수 차례 화재를 겪은 뒤 1633년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 이에미츠의 지원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갖추워졌다고 합니다.
나무 기둥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본당의 모습이 아주 이채로운 사찰로 봄에는 화사하게 피는 벚꽃,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단풍이 본당 건물과 어우러져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고 합니다.
청수사(키요미즈데라) 경내 안내도
인왕문 전경과 우측의 서문
젠코지도
우마토도예
소나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의 소나 말 또는 우.마차를 보관하는 곳
인왕문을 오르는 계단과 사자석등
인왕문 옆의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본 인왕문 전경
종루 전경
즈이구도 전경
삼층탑과 가이산도
석등 앞이 개산당(다무라당)으로 백제계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부부의 상을 모신 사당
원래는 이 사당 앞을 지나 회랑을 통하여 본당으로 갔다고 하는데 현재는 공사 중이라서
가이산도와 개산당 중간으로 돌아서 들어 가도록 하고 있어서
이 사당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한 탓에 개산당을 사진에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측이 개산당(다무라당)
조주인 전경
본당으로 가는 길
조주인으로 향하는 길
청수사 경내의 작은 연못속에 만들어진 정자각은 당초에 쉼터의 기능으로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에는 작은 신사로 꾸며져 있다.
청수당 본당 후면에는 지주(지슈)신사가 있는데 8세기 경 일본의 사찰은
대다수가 당시의 왕족(가야와 백제의 혈통이 혼재된) 이나 세력가( 한반도 도래인)가 세웠기 때문에
씨사(세력가문)의 역활을 주로 하였기에 내 생각에는 지주(지슈)신사란 것도
이 청수사란 절을 세운 백제계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란 세력가의 신사란 생각이 들더군요.
따라서 청수사와 지주(지슈)신사는 뗄래야 땔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존재하지만,
이 편에서는 올릴 사진이 많은 탓에 청수사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청수사 본전 안의 풍경
청수사 본당인 기요즈미의 무대에서 바라다 보는 조안사(코야스노토)
조안사 탑 바로 밑에는 집중호우에 산사태가 났었는지 비닐막으로 경사지가 덮여져 있습니다.
따라서 조안사 탑 앞으로 순환하여 나오는 계단은 페쇄되어 있었답니다.
측면의 오쿠노인 앞 경사지도 집중호우에 유실이 되는 탓인지 천으로 가림막을 .....ㅜㅜ
본전에는 십일면 천수관음을 모시는 곳이라지만 본전 안 깊숙히 자리 잡은 탓과
사진 촬영 제한 사유로 이 정도에서만 찍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십일면 천수관음은 촬영도 못하는.....ㅎ
본당에 모셔진 십일면 천수관음입상과 이십팔부중입상(참고:소학관 자료)
일본인 처자들이 향로에 향을 피우며 기원을 하는.....
본전 전경
본당 앞 기요즈미의 무대
본당 앞에서 내려다 본 오타와폭포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 이쁜 처자들과 안사람과 함께 본전 난간에서 기념 사진을.....ㅎ
지주(지슈)신사 입구로 청수사 본당 바로 위에 있답니다.
동백꽃
청수사 경내도에 보시면 제일 상단에 백체지세당이란 표기가 되어 있는데
제 생각에는 이 절이 백제계 씨사이다보니 이런 사당도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주(지슈)신사에서 바라다 본 사카도,아미다도,오쿠노인 입니다만,
현재 공사중이라서 그 앞으로 난 통로로만 지나칠 수 밖에는.....
이 뒷편에 백체지세당이 있어서 흥미롭기에 살펴보고 싶었지만 공사중인 관계로.....ㅜㅜ
공사중인 오쿠노인 앞에서 바라다 본 청수당 본전과 기요미즈무대
오쿠노인 앞에서 바라다 본 교토 시가지 전경
좌측으로 쿄토전망대가 바라다 보입니다.
신도를 강화하고 불교를 탄압하던 불교 수난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공동묘지
(청수사 뒷산은 다 이런 묘지들로 가득찬.....)
이 곳에서 청간사가 도보로 5분
자안탑 (코야스노토) 전경
자안탑(코야스노토)
자안탑(코야스노토) 앞에서
충견을 모신 사당
이런 돌부처들은 일본 불교가 박해 받을 때 파괴된 사원의
훼불 훼석 돌부처들을 뫃아 놓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청수사의 건립 시기를 살펴보면 야마토 정권시절 소가(백제계 도래인)와 모노베네의 싸움 이 후,
소가의 승리로 일본은 불교가 수용되어 발전을 이루게 되고, 이 후 소가 가문을 나카토미노를 시켜
제거시킨 후 나카토미노에게 후지와라라는 성을 하사하여 중앙 집권적 체제를 갖추게 되고,
이 후 80여년간의 나라시대를 거쳐 794년 교토로 도읍을 옮긴 시기
(이 때 정식으로 일본이란 나라 이름을 채택하였음)에 세워진 절이랍니다.
쿄토로 도읍을 옮긴 간무 덴노는 나라의 기틀을 바로 잡으려고 귀족들의 세력을 견제하고,
덴노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하게 하여 황실을 튼튼하게 하기위하여 노력하던 시기에
세워진 사찰이었으니 이 사찰은 황실과 연관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사찰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찰이 한반도 백제계 도래인이었던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의 씨사였다는 점은
이 당시 한반도에서 건너 간 가야,백제계의 도래인들의 이 당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생각됩니다.
청수사 건립의 근간이 되는 오타와 노다키 전경
세 줄기의 물이 흐르는데 왼쪽부터 첫 번째 물줄기는 학업성취,인연이루기,무병장수를 가르친다고 한다.
세 가지 중 한 가지 물만 택하여 받아 마셔야 소원이 이루워 진다고 합니다.
오타와 노다키 앞에서 바라다 본 청수사 본당
못 하나 없이 만들어진 본당의 기둥으로 세워진 기요미즈의 무대
엔친이 모셨다는 관음상으로 추정
오타와노다키 앞에서 떨어지는 물을 먹으려고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ㅎ
교토의 시가지와 교토를 흐르는 카모강
청수사 관광을 마치고 고속도로로 교토를 떠나 오사카로 다시 회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