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빛에 물들은 덕수궁의 아름다운 풍경들.1(2012.11.10)
덕수궁: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타자 1693년부터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다가 1611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가면서 경운궁으로 불렀다.
그 후 1897년 대한제국의 출범과 함께 황궁이 되었으나
1907년 고종황제가 물러나면서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 그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훼손되었으나 대한제국기의 역사적 격변을 겪은 궁궐로
국난극복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 중심지였다.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은 원래 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현재의 미국대사관저 건너편 서쪽에는 중명전을 비롯해 황실 생활을 위한 전각들이 있었고,
북쪽에는 역대 임금들의 제사를 지내는 선원전 일원이 있었으며,
동쪽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을 설치하여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고종항제가 황위에서 물러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쳐하는 궁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고 이름도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이 후 궐내각사 일부와 환구단이 철거되었고 이 지역은 대한제국의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다.
고종이 승하한 뒤 1920년부터 일제가 선원전과 중명전 일대를 매각하여 궁역이 크게 줄어 들었으며,
1933년에는 많은 전각들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일반에 공개하였다.
이처럼 덕수궁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원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대한제국기의 역사적 격변을 겪은 궁궐로 국난극복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 중심이었다.
중화전(중화문과 함께 보물 제819호): 중화전은 경운궁의 정전(법전)으로 왕의 즉위식.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들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중 화 문
계단 답도에는 조선 궁궐의 정전 중 유일하게 용 두마리가 새겨져 있다.
다른 궁궐의 정전에는 모두 봉황이 새겨져 있으나 대한제국 출범 후
지어진 건물이기에 황제를 상징하는 용을 장식한 것이다.
석 어 당
죽 조 전
준 명 당
석 조 전